움베르토 에코
이탈리아 자택서 암으로 별세
기호학자이자 미학자로 활동
‘장미의 이름’으로 세계적 명성
기호학자이자 미학자로 활동
‘장미의 이름’으로 세계적 명성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국내에서도 이름이 높은 이탈리아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19일 저녁 이탈리아 자택에서 암으로 별세했다고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가 보도했다. 향년 84.
1932년 이탈리아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이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기호학자, 중세사학자, 미학자, 비평가로서 다양한 영역에서 열정적인 저술 활동을 펼쳤다. 20대 시절 밀라노의 한 방송국에서 일하던 그는 토리노대학에서 받은 자신의 철학 박사 학위 논문을 발전시킨 첫 저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문제>를 1956년 출간했다.
그뒤 이탈리아 토리노대, 밀라노대, 피렌체대 강단에 섰으며 1971년부터는 최초의 국제 기호학 학회지 <베르수스>의 편집자를 맡고 같은 해 볼로냐 대학 문학 및 철학 학부 기호학 부교수로 임명되면서 그의 이론을 튼실하게 다져나갔다. 1974년 밀라노에서 제1회 국제기호학회를 조직하고, 이후 1980년대까지 미국 뉴욕대와 콜롬비아대 방문교수 등 미국과 유럽 대륙을 오가며 전방위적으로 활동했다. 1992년부터 1993년까지 하버드 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하기도 했으며, 1993년과 2003년 프랑스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주중에 연구하고 후학들을 기르는 가운데, 주말에는 소설을 쓰면서 작가로서도 활동했다. 14세기 중세 이탈리아 한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1980)은 에코의 해박한 지식이 총집결된 결정체로, 40여개국에 번역돼 3000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 프랑스 메디치상과 이탈리아 스토레가상 등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에코는 세계적 작가로서 널리 이름을 알렸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소설가보다 철학자로 불리길 원했다. 젊은 시절부터 철학에 몰두했으며 1959년 <중세 미학의 발전>(개정판 <중세의 미학>)을 출간해 중세 연구가로 인정받았고 자타 공인 기호학계의 거물이었다.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했고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를 읽을 줄 알던 언어 천재이기도 했다.
중세는 일생을 통틀어 그의 관심사였다. 2000년 들어서는 ‘유럽 문명 프로젝트’를 기획해 이탈리아를 비롯한 수백명의 학자들이 참여한 <중세> 시리즈(전 4권, 2010~2011)의 기획과 편집을 맡았다. 이 책은 ‘중세 대백과’격으로 중세가 암흑기라는 편견어린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고자 한 도전이었다. 이후 <고대>(전3권) <근대>(전5권)를 연달아 기획·발간해 고대부터 근대까지 서구 문명 전체를 통괄하려는 필생의 작업을 시도했다. 그의 평전을 쓴 이탈리아 철학자 다니엘 살바토레 시페르는 “에코의 지식은 수천년에 걸쳐 쌓아올린 서구 문명 지식들에 대한 방대하고도 눈부신 종합”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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