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별세
작가·기호학자·미학자 ‘지적 공룡’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국내 많은 팬
고대~근대 서구문명 통괄 매달려
작가·기호학자·미학자 ‘지적 공룡’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국내 많은 팬
고대~근대 서구문명 통괄 매달려
소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추>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두고 있는 이탈리아 작가이자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20일 오전 6시30분(한국 시각) 자택에서 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84.
1932년 이탈리아 북부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이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지성이자 ‘살아있는 도서관’으로 일컬어졌다. 2005년 영국 정치평론지 ‘프로스펙트’와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함께 선정한 ‘최고의 지식인 100인’ 가운데 2위에 오르기도 했다. 1위는 노엄 촘스키였다.
에코는 평생 기호학자, 중세사학자, 미학자, 비평가, 소설가로 맹활약하며 다양한 영역에서 열정적인 저술 활동을 펼쳤다. 20대 시절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평생 관심사였던 저널리즘과 미디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만 22살이 채 되기도 전에 토리노 대학에서 받은 철학 박사 학위 논문을 발전시킨 첫 책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적 문제>를 1956년 출간했다.
1960년대부터는 토리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 강단에 섰다. 1971년 최초의 국제 기호학 학회지 <베르수스>의 편집자를 맡았고 같은 해 볼로냐 대학 부교수로 임명되면서 미학, 기호학, 문학적 층위로 나눠진 이론의 기틀을 잡아나가기 시작한다. 1975년 볼로냐 대학 정교수로 임명되었고, 최근까지 같은 대학 명예교수를 역임했다. 미국과 유럽 대륙을 오가면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했다.
주말에는 소설을 쓰면서 작가로서 활동했다. 14세기 중세 이탈리아 한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첫 소설 <장미의 이름>(1980)은 에코의 해박한 지식이 총동원된 결정체로, 지금까지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300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1986년에는 장 자크 아노 감독과 숀 코너리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대중에게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친숙한 그였지만, 스스로는 소설가보다 철학자로 기억되길 원했다. 1959년 발간한 두번째 책인 <중세 미학의 발전>(개정판 <중세의 미학>)은 그가 중세 연구가로 학계에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고 그뒤 자타 공인 중세 철학과 기호학계의 거물이 돼 후학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했고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를 읽을 줄 알던 ‘언어 천재’였으며 양피지, 종이, 텔레비전, 컴퓨터 등 인류가 발명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들을 모조리 섭렵하고 활용한 ‘미디어 잡식가’이기도 했다.
일생을 통틀어 중세에 관심을 갖던 그는 기호학을 징검다리 삼아 중세와 현대를 오갔다. 2000년 들어서 ‘유럽 문명 프로젝트’를 기획해 수백명의 학자들이 참여한 <중세> 시리즈(전 4권, 2010~2011)의 기획과 편집을 맡았다. 이 책은 ‘중세 대백과’격으로 중세가 암흑기라는 고정관념에 균열을 냈다. 이후 <고대>(전3권) <근대>(전5권)를 연달아 기획·발간해 고대부터 근대까지 서구 문명 전체를 통괄하려는 필생의 작업을 시도했다. 지난해 이탈리아에서 발간한 소설 <숫자 0>(Numero Zero)는 그의 마지막 소설이 되었다.
에코의 평전을 쓴 이탈리아 철학자 다니엘 살바토레 시페르는 과거를 복원하고 현재와 연결하는 에코의 지적 작업을 일컬어 “수천년에 걸쳐 쌓여 내려온 서구 문명 지식들에 대한 방대하고도 눈부신 종합”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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