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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함께한 30년

등록 2016-02-25 20:29

잠깐독서
꽃은 많을수록 좋다
김중미 지음/창비·1만4500원

“괜찮아, 너는 특별하니까.” 학습부진아반이 뭐냐고 묻는 아이에게 공부를 못해도 가난해도 ‘네가 왜 괜찮은 아이’인지 찾아주려 했다. “네가 정 그 벼랑으로 뛰어내리겠다면 내가 같이 뛰어내릴게.” 본드 흡입과 폭력으로 구치소를 드나들며 속을 끓일 땐 손을 더욱 꼭 잡았다. 인천 빈민지역 만석동 ‘괭이부리말’에 꾸린 기찻길옆공부방 1호 졸업생이 서른여덟 아빠가 되고 건실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단다. 눈물을 가장 많이 쏟게 한 아이였지만, 됐다. 사람을 믿고 기다릴 희망이 있다는 기쁨을 안겨줬으니.

<꽃은 많을수록 좋다>는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더불어 산 지 30년째인 김중미 작가가 소설 형식을 빌리지 않고 ‘공부방 이모’로 써내려간 첫 에세이집이다. “나와 같이 사는,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은 세상이 매기는 등급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며 “성공, 1등, 우등, 모범과는 거리가 먼, 지질하고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다. 1987년 ‘기찻길옆 아가방’을 시작으로 이듬해 ‘기찻길옆 공부방’으로 2001년 다시 ‘기찻길옆 작은학교’로 공동체를 이뤄간 이야기며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이유, 농산물 등급 매기듯 하는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 등을 담았다. 2001년 강화로 이사해 만석동을 오가며 농사짓는 농촌생활 근황도 반갑다.

30년간 어려움이 왜 없었을까? 판자와 슬레이트로 지은 공부방에 차린 신접살림, 자기 공간이 없는 사춘기 딸과의 갈등, 공부방 교사들간의 지향점 차이, 경제적인 문제 등이 시시때때로 불거졌지만 “삶을 포기하기 직전 떠오르는 곳이 공부방밖에 없는 아이들” 생각에 전깃불을 맘대로 끌 수도 문을 닫을 수도 없었다. “지켜야 할 것은 모두가 가난해질 때까지 나누는 것이고, 끝까지 싸워야 할 것은 몇 사람만이 누리는 풍요”라는 원칙을 잊지 않은 것이다. “세상을 바꿀 거대한 담론이나 힘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러나 좋아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세상에 균열을 내는 작은 움직임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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