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나선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 지음, 김경숙 옮김
사이·1만8000원 여론은 사랑과 같다. 움직인다. 어디로? 대세 쪽으로. 왜? 일찍이 미국 정치 커뮤니케이션학계에선 ‘밴드웨건 효과’에 주목했다. 지지율이 높다고 알려진 후보에게 유권자 지지가 쏠리는 현상이다. 승자 편에 서고 싶은 인간 심리가 근거로 제시됐다. 1972년에 다른 설명이 제기됐다. 여론이 쏠리는 건 고립을 피하려는 인간의 본능적 심리 때문이라는 독일 커뮤니케이션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의 가설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사회적으로 우세하고 다수 의견에 속하면 자신있게 겉으로 표명하고, 소수 의견에 속하면 침묵한다.” 그 결과는 다수 의견은 점점 세가 커지는 반면, 소수 의견은 갈수록 쪼그라드는 여론의 ‘빈익빈 부익부’다. 노이만은 이를 ‘침묵의 나선’이라고 명명했다. 일상에서 얼마든지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를 찾을 수 있다는 게 이 이론의 강점이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시는 간단한 실험으로 이를 입증했다. 네 직선 중 두 개는 누가 봐도 길이가 똑같다. 하지만 앞에 앉은 7명의 실험보조원이 누가 봐도 길이가 다른 직선을 계속 같다고 고른다. 마지막 참가자는 결국 자신의 판단을 꺾고 다수의 ‘여론’을 따른다. 10명 중 단 2명만이 주관을 지켰다. 모두 ‘예스’라고 할 때 혼자 ‘아니오’라 말하는 건 인간의 사회적 속성에 반한다. <침묵의 나선>은 소집단을 넘어 사회 전체의 여론 형성 과정을 들여다본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고립을 피하려 끊임없이 사회 여론 지형을 가늠한다. 대중매체와 주변 사람들의 반응까지 포괄해 여론의 세를 감지하는 유사통계감각을 갖고 있다고 이 가설은 본다. 이런 속성에 주목함으로써 이 가설은 보통의 여론조사로는 포착하지 못하는 여론의 움직임을 드러낸다. 선거에서 자신의 지지 정당이 소수임을 개인들이 감지하고 침묵에 들어간다고 가정해보자. 두 가지 흐름이 모두 가능하다. 일부 부동층이 대세 여론을 따라 투표하면, 시끄러운 다수의 승리가 확정된다. ‘침묵의 나선’ 가설에서 보는 ‘밴드웨건 효과’이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세가 일방적 대세를 형성했던 2007년 대선을 떠올릴 수 있겠다. 반대로, 침묵하던 사람들이 투표소에서 ‘내심’을 표출할 수도 있다. 일반적 여론조사가 흔히 실패하는 ‘막판 뒤집기’이다. ‘침묵의 나선’ 제기 이후 독일 정치권의 여론 대응 전략에는 변화가 생겼다. 심층 여론 동향 파악을 위한 조사기법을 도입하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침묵 대신 적극적 홍보에 나서도록 지지층을 독려한다. 어떤 의견을 대변하는 신문·방송이 있으면, 사람들은 소수일지라도 그 의견 표현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는 대목은, 소수 매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책은 1984년 초판 간행 이후 ‘고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번역본은 1992년 수정본에 토대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 지음, 김경숙 옮김
사이·1만8000원 여론은 사랑과 같다. 움직인다. 어디로? 대세 쪽으로. 왜? 일찍이 미국 정치 커뮤니케이션학계에선 ‘밴드웨건 효과’에 주목했다. 지지율이 높다고 알려진 후보에게 유권자 지지가 쏠리는 현상이다. 승자 편에 서고 싶은 인간 심리가 근거로 제시됐다. 1972년에 다른 설명이 제기됐다. 여론이 쏠리는 건 고립을 피하려는 인간의 본능적 심리 때문이라는 독일 커뮤니케이션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의 가설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사회적으로 우세하고 다수 의견에 속하면 자신있게 겉으로 표명하고, 소수 의견에 속하면 침묵한다.” 그 결과는 다수 의견은 점점 세가 커지는 반면, 소수 의견은 갈수록 쪼그라드는 여론의 ‘빈익빈 부익부’다. 노이만은 이를 ‘침묵의 나선’이라고 명명했다. 일상에서 얼마든지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를 찾을 수 있다는 게 이 이론의 강점이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시는 간단한 실험으로 이를 입증했다. 네 직선 중 두 개는 누가 봐도 길이가 똑같다. 하지만 앞에 앉은 7명의 실험보조원이 누가 봐도 길이가 다른 직선을 계속 같다고 고른다. 마지막 참가자는 결국 자신의 판단을 꺾고 다수의 ‘여론’을 따른다. 10명 중 단 2명만이 주관을 지켰다. 모두 ‘예스’라고 할 때 혼자 ‘아니오’라 말하는 건 인간의 사회적 속성에 반한다. <침묵의 나선>은 소집단을 넘어 사회 전체의 여론 형성 과정을 들여다본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고립을 피하려 끊임없이 사회 여론 지형을 가늠한다. 대중매체와 주변 사람들의 반응까지 포괄해 여론의 세를 감지하는 유사통계감각을 갖고 있다고 이 가설은 본다. 이런 속성에 주목함으로써 이 가설은 보통의 여론조사로는 포착하지 못하는 여론의 움직임을 드러낸다. 선거에서 자신의 지지 정당이 소수임을 개인들이 감지하고 침묵에 들어간다고 가정해보자. 두 가지 흐름이 모두 가능하다. 일부 부동층이 대세 여론을 따라 투표하면, 시끄러운 다수의 승리가 확정된다. ‘침묵의 나선’ 가설에서 보는 ‘밴드웨건 효과’이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세가 일방적 대세를 형성했던 2007년 대선을 떠올릴 수 있겠다. 반대로, 침묵하던 사람들이 투표소에서 ‘내심’을 표출할 수도 있다. 일반적 여론조사가 흔히 실패하는 ‘막판 뒤집기’이다. ‘침묵의 나선’ 제기 이후 독일 정치권의 여론 대응 전략에는 변화가 생겼다. 심층 여론 동향 파악을 위한 조사기법을 도입하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침묵 대신 적극적 홍보에 나서도록 지지층을 독려한다. 어떤 의견을 대변하는 신문·방송이 있으면, 사람들은 소수일지라도 그 의견 표현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는 대목은, 소수 매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책은 1984년 초판 간행 이후 ‘고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번역본은 1992년 수정본에 토대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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