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황석영 지음/교유서가·1만3800원 <황석영의 밥도둑>은 2001년에 나왔던 <노티를 꼭 한 점만 먹고 싶구나>(이듬해 ‘황석영의 맛과 추억’으로 개제)의 개정판이다. 기존 글을 손보고 각각 2013년과 2014년에 세상을 뜬 화가 여운과 김용태에 얽힌 글 두 편을 추가했다. 이른바 ‘먹방’이 대세라지만, 이 책이 그런 얄팍한 유행에 편승한 것은 아니다. 작가 황석영은 워낙에 음식을 먹고 만드는 데에 관심이 깊고, 사람들과 어울려 음식 먹은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기를 즐겼다. 군 복무 시절 서리한 닭을 철모에 삶아 먹었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에서 그는 군대와 감방처럼 억압적이고 폐쇄된 공간에서 입을 즐겁게 했던 음식들에서부터 지난 시절 길고 짧게 사랑했던 여인들과 나누었던 음식의 추억, 어머니와 유년기에 얽힌 먹을거리, 독일과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타국의 음식들 그리고 고국 땅 이 동네 저 골목의 토박이 음식 이야기를 차례로 들려준다. “거무튀튀한 ‘언 감자국수’의 면발은 차지고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언 감자를 갈아서 녹말을 낸 다음에 끓는 물에다 국수를 뽑아서는 차디찬 콩물에 말아 먹는다. 위에는 검은깨를 뿌리고 함경도식 갓김치를 얹어서 먹는다.” 1989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 주석과 함께 먹었던 언 감자국수에 관한 묘사다. 두만강 연안에서 항일 투쟁을 할 때 인민들이 유격대를 위해 일본군 눈을 피해 산길에 묻어 놓아 얼어버린 감자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던 데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음식을 먹는 맛이 각별했겠다. “한입 씹자마자 그야말로 오래된 뒷간에서 풍겨올라오는 듯한 암모니아 가스가 입안에서 폭발할 것처럼 가득찼다가 코로 역류하여 터져나왔다. 눈물이 찔끔 솟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단숨에 막사발에 넘치도록 따른 막걸리를 쭈욱 들이켰다. 잠깐 숨을 돌리고 나니 어쩐지 속이 후련해졌다. 참으로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버리는 맛의 혁명이다.” 짐작하겠지만 칠십년대 초 그가 처음 홍탁에 입문했을 때의 경험담이다. 쾌감 대신 충격과 고통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반(反)음식이라고나 해야 할 삭힌 홍어를 가리켜 ‘맛의 혁명’이라 표현한 것이 적실해 보인다. 음식은 혀를 자극하고 배를 불리는 영양소만은 아니다. 함께 나눈 사람과 추억이 음식 이야기를 비로소 완성시킨다. “어느 먼 산골이나 바닷가 어촌에서 두 사람이 먹던 음식의 맛은, 지금 아무데서나 다시 찾아 먹을 수 있는 흔한 먹을거리라 할지라도 다시는 되살려낼 수가 없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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