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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잘못된 첫 단추’ 진보의 도그마 깨기

등록 2016-03-17 20:10

다시 읽는 한국 현대사
양우진 지음/생각의힘·1만6000원

한국 현대사는 그간 수없이 ‘다시’ 읽혀왔다, 숱한 필자에 의해서. 그런데 또 “다시 읽는” 한국 현대사라니. 게다가 저자는 경제학 전공자인데, 부제는 ‘정치의 새로운 실천을 기대하며’라고 달려 있다.

이 ‘비전공자’의 문제의식은 책의 들머리에서 곧장 제시된다. 저자는 “근대의 초반에 겪은 일들을 단순히 실패로 간주하는 관점을 넘어설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여기서 ‘실패’란 통일된 민족국가를 수립하지 못한 것, 이승만을 위시한 보수 세력이 정권을 잡은 것, 친일세력 청산에 실패하고 미국의 영향권에 깊숙이 포섭된 것, 자립적 민족경제를 세우지 못하고 대외종속이 심화된 것 등이다. 그런 ‘관점’의 주인이면서 이 질문을 받아야 할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민족민주운동 세력-저자의 표현으로는 ‘관행 좌익’-이다. 그들은 해방 공간에서 잘못 끼워진 ‘첫 단추’에 끝없이 집착한다. 당연히, 그 이후 근대의 전 과정은 부정과 실패의 역사다. 배후론 ‘제국주의’ 미국을 지목한다.

그러나 저자의 해석은 다르다. 분단과 전쟁은 미·소의 한반도 분할 점령에 내포돼 있었다. 미국이 처음부터 이승만을 밀었던 것도 아니다. 일국 완결적인 민족 자립경제는 상상 속 모델일 뿐 현실이 될 수는 없었다. 5·16 이후 산업화는 당시 선택 가능한 유일한 길이었다. 자립경제의 파탄을 예언한 반체제운동권의 예상은 빗나갔다. 산업화와 대외개방은 “자립경제의 달성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사실상 해결”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깊숙이 편입된 독점자본주의다. 87년 시민의 폭발적 성장으로 가능했던 일이지만, “근대도 그런대로 얼추 달성”됐다.

그럼에도 민족민주운동 세력이 끊임없이 현대사를 폄하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부족한 실력과 허약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일이다. 지역주의를 부여잡고, 박정희 시대를 민족중흥의 신화로 채색하려 드는 보수세력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역사전쟁’, ‘도덕정치’에 몰두한다면 저성장, 실업·비정규직, 불평등 심화 따위 산적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의 복원과 진화는 불가능하다. 서로 존재를 인정하고, “과거에 집착하여 남다른 도덕성(?)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과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통해 정당성을 구축하려는” 포용의 정치가 저자가 기대하는 ‘정치의 새로운 실천’인 셈이다.

책 곳곳에는 ‘관행 좌익’들이 경기를 일으킬 만한 표현이 많다. 비판의 방향도 주로 그들을 향해 있다. 글도 사뭇 공격적이다. 하지만 저자는 흔한 ‘뉴라이트’ 학자가 아니다. 그는 1991년 가까운 후배들과 함께 펴낸 <한국 자본주의 분석>(일빛)에서도 도그마에 사로잡혀 공허한 논쟁만 일삼는 관념적 운동론자들을 비판한 바 있다. 이런 문제의식은 박사학위 논문에서도 이어졌다. 저자와 학문적 교류를 계속해온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민족민주운동 세력으로 대표되는 진보 진영의 반성과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는 것이 이 책”이라고 평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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