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야당을 심판하는 선거?

등록 2016-03-17 20:44수정 2016-03-17 20:44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토마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2012)

총선을 앞두고 최근 <한겨레>가 보도한 수도권 접전지역의 여론조사 기사(3월14일치)를 보다 눈길이 머무는 곳이 있었다. 바로 ‘여당심판론’(38.8%)과 ‘야당심판론’(32.4%)이 엇비슷한 비율로 나온 것이다. 청년들 입에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란 탄식이 나올 정도로 청년실업 등 경제 문제가 최악일 때 ‘야당심판론’이 이렇게 높게 나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일단 “이 모든 책임이 발목 잡는 야당에 있으니 총선에서 응징해 달라”는 정부·여당의 주장이 먹혔다고 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책임을 야당에 뒤집어씌우는 데 유난히 힘을 쏟아왔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뜻대로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게 된 상황을 되치기하는 것이다.

물론 야당도 국정운영에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야당을 정부·여당과 같은 반열에 놓고 책임을 따지는 것은 상식 밖이다. 더군다나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관련법처럼 야당이 발목을 잡았다는 법 가운데는 그대로 통과되면 일반 국민이 더 고통스러워질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정부·여당은 “열심히 일하려는 개미”와 “사사건건 발목 잡는 베짱이”의 우화를 반복해서 환기시킨다. 이런 프레임을 자꾸 들으면 어떤 정책이 나에게 끼칠 사회적·경제적 영향보다는 일을 해가는 태도가 더 큰 문제로 느껴진다. 그래서 야당이 더 미워지는 것이다.

이게 우리만의 현상은 아닌 것 같다. 미국에서는 지난 30년간 서민층이 전통적으로 지지하던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부자와 기업의 정당인 공화당을 찍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 책에서 저자인 토마스 프랭크는 고향인 중부 캔자스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세밀하게 관찰한다.

“우리가 왜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 벌을 줘야 하죠?” 언제부터인지 캔자스의 낙후한 지역 주민들은 이런 말로 누진세 등 부자증세에 반대한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 민중의 어처구니없는 착란 현상을 조장하는 보수우파의 오랜 책략의 결과라고 말한다. 그 기본원리는 경제를 정치와 분리한 채 낙태, 성평등 같은 가치의 문제를 집중 제기해 사람들의 분노를 조장하는 것이다.

이때 희생양이 되는 것은 우리의 ‘종북좌파’처럼 허상의 ‘자유주의자’들이다.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 대 라테를 마시고 문화적 돌출행동을 하며 입으로 거들먹거리는 자들이란 구도가 만들어진다. 경제가 안 돌아가는 것도, 미디어가 난잡해진 것도, 심지어 청소년이 버릇이 없어진 것도 이들 탓이다.

이렇게 엉뚱하게 분노한 서민들은 경제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에 가장 반하는 공화당에 몰표를 준다. 선거가 끝난 다음 표를 받아간 당이 하는 일은 기업, 무역, 농업 관련 규제를 풀어 거대 기업과 월가를 살찌우고 서민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이 국내에 번역돼 나온 것은 2012년 총선 직후였다. 복지가 화두가 될 만큼 경제적 불만이 끓어오를 때였지만, 새누리당이 다시 승리한 선거였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반년 동안 5쇄를 찍을 만큼 잘 읽혔다.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전략 부국장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전략 부국장
이번 선거는 어떨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의 선택이 경제적 처지에 따라 자동으로 갈릴 것이란 기대는 순진하다는 것이다. 손이라도 한번 잡아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게 정치인지 모른다.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전략 부국장 bh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