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일본 메이데이 현장. 구호는 “폐를 끼치더라도 살고 싶다”였다. 이들은 “히키코모리, 야숙자, 동성애자 만세!”를 외쳤다. 지은이는 ‘폐를 끼친다’는 것이 새로운 관계성과 마을 형성의 증거라고 본다.
신지영 사진, 갈무리 제공
도쿄·서울·뉴욕서 출현한
소수자 마을과 부족민들
빛과 어둠 보며 ‘연결’ 탐색
소수자 마을과 부족민들
빛과 어둠 보며 ‘연결’ 탐색
- 동아시아 이방인이 듣고 쓰는
마을의 시공간
신지영 지음/갈무리·2만5000원 거리에는 선전지, 슬로건, 고백, 구호, 소문이 넘실거렸다. 주민들은 ‘길 위의 지식’을 만들어 냈고, 지은이는 동아시아 여성 이방인으로서 현장을 기록했다. <마이너리티 코뮌>은 시민인 동시에 난민인 사람들이 모여 생성·소멸하는 소수자 마을을 증언하는 책이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지은이가 찾은 ‘거리의 코뮌’은 한국·일본·미국을 합쳐 40곳 정도. 일본 반전·반빈곤 운동, 재일 조선인 차별 반대 운동, 헤이트 스피치 대항 데모, 야숙자(홈리스)들의 점거 활동, ‘범죄 인종주의’에 저항하는 뉴욕의 거리도 포함됐다. 한국의 두물머리 활동가, 재능교육 투쟁 농성장 등 접속한 ‘부족민’들도 일일이 열거하기에 벅찰 정도로 다양하다. 지은이 신지영 박사는 2000년부터 ‘수유+너머’ 활동을 했고, 현재 일본 여러 대학에서 한국 근대문학 및 비교문학을 가르치는 한국 연구자다. 2007년 무렵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 활동을 보며 ‘마을’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책은 학술서, 르포, 문학적 에세이, 역사서가 아니지만 동시에 그 모든 성격을 띤다. ‘팩트’를 다룰 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의 시간적 맥락, 공간적 감각과 분위기를 충실히 다뤘기 때문이다. 각 코뮌 현장에서 느낀 뜨거운 감상과 느낌, 한발 떨어진 이성적 판단이 중층을 이뤄 500여쪽에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때마침 격변의 시기였다. 2008년 말 미국을 중심으로 ‘점거하라’ 운동이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반빈곤 운동, 비정규직 운동, 재일 조선인 운동이 있었고 한국에서는 2011년 희망버스 운동이 시작되었다. 2011년 3·11 후쿠시마 참사, 2014년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미국에서는 인종주의 경찰 폭력에 대한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전지구적 위기는 또 다른 배제와 차별을 낳았다. 3·11 사태 직후 일본의 도호쿠 지역 조선학교에는 방사선 측정기가 지급되지 않았다. 인종주의가 심화돼 재일 조선인들은 쉽게 공격받았다. 재해 대책을 빌미로 야숙인들은 거리에서 쫓겨났고 비정규직은 대량 해고되었다. 혼란을 틈타 오키나와 미군기지 건설도 속도를 냈다. 급기야 2013년 일본 정부는 ‘특정비밀보호법’을 제정했다. 특정인을 손쉽게 범법자로 만들 수 있는 법이라며 비판이 쏟아졌다. 저항하는 이들은 ‘테러범’에 견줘졌다. 인종주의, 국가폭력의 제도화, 담론의 우경화는 각국 코뮌에도 그늘을 짙게 드리웠다. 소수자 마을 안에서 더 약한 사람들에 대한 타자화와 배제가 생겼다. 어떤 코뮌은 심각한 폭력 사건이 생겼는데도 투쟁이 약화될까 두려워 입을 다물기도 했다. 저항적 마을의 빛과 그림자를 검토하며 이 책은 코뮌 속 ‘타자에 대한 감각’을 심문한다. 결국, 코뮌은 홀로 혁명하는 고독에 빠지기보다 연결되어야 한다고 이 책은 제안한다. 과연 ‘이곳’의 저항 활동은 또 다른 ‘저곳’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 이것이 핵심 질문이다. 불가능할 것도 없다. 이를테면 2014년 10월 미국 컬럼비아대 교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발화 운동이 한 예다. 무거움을 함께 짊어진 발언자들은 서로 손을 잡고 어깨를 감쌌고 “연결과 출구와 언어들”을 찾았다. 전지구적 상황도 동일한 감각을 키운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3·11 직후 일본 정부, 세월호에 탄 선원들, 아프리카계 시민에게 총을 쏜 미국 경찰의 공통적인 명령이었다고 지은이는 분석한다. 결론은 ‘명령을 따라도 죽고, 따르지 않아도 죽는다’는 것. 지은이는 이에 “세계 시스템과의 싸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세계적으로 연결된 명령 시스템-법, 행정, 자본의 흐름”과 싸우려면 우선 마을이 손잡고 접촉해야 한다. <한겨레>에 보낸 이메일에서 지은이는 “마이너리티 코뮌들의 만남을 모색하는 것은 ‘~이후’에 오는 망각과 마취와 고립과 병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과거 식민지의 역사, 폭력의 역사를 증언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반복되어 온 폭력과 배제의 문제들을 마이너리티 코뮌의 활동과 만남과 접속시키면서 만들어내는 소문의 아카이빙이 필요하다.” 일본의 특정비밀보호법, 한국의 테러방지법 등 지금 동아시아가 처한 ‘법 파시즘’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은이가 말한 대로 지금 여기, ‘이후’를 고민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각자 ‘기록자’ ‘증언자’가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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