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신태영은 악녀인가 희생자인가

등록 2016-03-31 20:29수정 2016-03-31 20:29

조선은 여성 성 통제와 훈육을 위해 임병양란 이후 <삼강행실도>를 재간행했다. 그림은 <삼강행실도> 열녀편의 한 장면. 남편 사후 홀로된 양나라 여자 고행은 첩으로 들어오라는 왕의 청을 거부하며 자신의 코를 잘라버린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휴머니스트 제공
조선은 여성 성 통제와 훈육을 위해 임병양란 이후 <삼강행실도>를 재간행했다. 그림은 <삼강행실도> 열녀편의 한 장면. 남편 사후 홀로된 양나라 여자 고행은 첩으로 들어오라는 왕의 청을 거부하며 자신의 코를 잘라버린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휴머니스트 제공
숙종 때 ‘희대의 이혼 소송’
논쟁과 당사자 진술 바탕해
강명관 부산대 교수 재구성
신태영의 이혼 소송
1704~1713

강명관 지음/휴머니스트·1만3000원

<열녀의 탄생>(2009),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2012)에서 조선 남성 사족이 구축한 성정치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가 새 책을 펴냈다. 장안이 떠들썩했던 조선시대 이혼 사건을 다룬 <신태영의 이혼 소송 1704~1713>이다.

지은이는 남자들이 쓴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손톱만큼 등장하는 한 양반가 여성의 육성을 꼼꼼하게 되살렸다. 워낙 기록이 적은 탓에 책도 200여쪽으로 가볍지만 가부장적 유교 국가가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물적 기반을 어떻게 통제했는지 묵직하게 파헤친다.

1678년, 조선 후기 유명한 경화세족이던 기계 유씨 집안의 아들 유정기가 신태영을 아내로 맞는다. 두 사람은 10년 동안 별일 없이 살며 5명의 자식을 낳았다. 1690년 어느 날, 남편 유정기는 시부모에게 불효했다며 시누이들을 동원해 아내 신태영을 일방적으로 쫓아낸다. 신씨가 욕을 하고 사당에서 난리를 치며 제주에 오물을 섞고, 제석 같은 물건도 부쉈다고 했다.

사헌부 장령이던 유정기의 친구 임방은 친구를 대신해 신태영을 법적으로 완벽하게 제거하려고 조정에 이혼을 신청했다. 신씨의 성정이 패악스럽고 남편과 언쟁을 벌인 뒤에는 혼자 한밤중에 집에서 나갔다고도 덧붙였다. 큰 문제였다. 한밤에 여인이 홀로 집을 나선 것 자체가 남편 아닌 남성과의 성 접촉, 곧 ‘성적 오염’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예조는 국법인 <경국대전>에 이혼 관련 조항이 없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그 뒤 조정의 의견은 둘로 나뉜다. 신태영을 쫓아낸 것이 정당하다는 쪽과 증거가 부족하다며 이혼을 불허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형조로 사건이 이첩돼 신태영은 의금부에 하옥되었는데, 이것이 절호의 기회였다. 수감된 상태에서 발언권을 얻은 그는 논리적이고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했다. 본인은 남편과 나름 성적 관계도 원만하게 10년 동안 살았지만 1688년, 남편 유씨가 계집종인 비첩 ‘예일’에게 ‘고혹’되었고 2년 뒤 자신을 집에서 내쫓았다는 것이다. 남편과 적대적 남성들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홀로 된 신태영은 무고하다며 자신을 전략적으로 변론했다. 심지어 남편의 이상한 성적 취향까지 폭로해 수치심을 주고 주변을 놀래켰다. <숙종실록>의 기사를 보면, 사관은 거의 감탄조로 기록한다. “(신태영의 진술이) 조리가 있어, 마치 문사가 구성해준 것 같았다. 여인이 대답한 바가 결코 이럴 수는 없다.” 물론 편견 가득한 평가다.

신태영이 조선 초에 태어났다면 인생은 달랐을 것이다. 책을 보면, 조선 전기 때만 해도 양반가 부인들은 비첩을 폭행하고 잔혹하게 살해하는 수가 많았다. 돌로 때리고 불로 지져 죽인 비첩의 시신을 남편에게 보내기도 했다. 처가살이가 흔했던 때여서 남편을 맘대로 부리거나 못생겼다며 핍박한 예도 있고, 여성의 섹슈얼리티 또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중과 간통하거나 성기가 크다는 남자를 선호했다는 여성 이야기도 전해내려온다. 그러나 임병양란 뒤 17세기 후반부터 여성의 지위는 격변했다.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국가는 여성의 행동과 성을 통제하고자 <삼강행실도>를 재간행했다. 더군다나 여성 종속을 정당화한 이론가, 노론의 영수 송시열(1607~1689)이 있었다. 그는 결혼하는 딸에게 가르침을 주는 <계녀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남편이) 첩과 아무리 사랑하여도 노기 두지 말고 더욱 공경하여라.” 남자의 성적 욕망을 인정하고 그럴수록 더 떠받들어주라는 송시열의 가르침은 당대 금과옥조였고, 지금까지도 가부장이 반복재생산하는 ‘여성 행실’의 기원이 되었다.

남존여비, 삼종지도에 물든 양반 사족들은 열녀를 칭송하고 저항하는 여성을 징벌했다. 이혼 사건에서 신태영은 가장 큰 피해자였다. 투옥되었고, 화병에 걸렸으며, 태 40대와 장 80대를 맞은 뒤 4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투기의 화신, 사나운 아내, 악녀, 위험인물로 후대까지 손가락질을 받았다. 자녀들 이름도 기계 유씨 집안에서 삭제됐다. 이혼은 허가되지 않았지만 성호 이익(1681~1763)은 신씨 같은 여자를 쫓아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성호사설> ‘출처’(出妻)에서 그는 “나는 사나운 아내를 둔 사람을 많이 보았다”, “(부인이) 남편 뜻을 거스르고 어지럽히니, 장부의 마음에 때로는 구타하고 싶었을 것이오”라며 남성 폭력과 여성 처벌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조정에 제기된 소송 기록이 법정 드라마처럼 극적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여성의 저항적 목소리와 이를 억누르는 유교 가부장의 욕망이 잘 드러난 책이다. 지은이는 총 900쪽에 이르는 전작 <열녀의 탄생> 후기에서 여성사 저술에 나선 까닭을 설명한 바 있다. 총명했지만 재능을 꽃피울 수 없었던 어머니와 큰누나가 겪은 차별을 깨닫고 조선 여성의 훈육과 성 통제를 연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쌓은 지은이의 ‘내공’ 덕분에 다음의 결론도 가능했을 것이다. “남성-사족의 가부장제는 여성을 삼켰으나, 여성은 가시가 되어 목에 박혔다. 더 깊이 삼킬 수도, 쉽게 뱉을 수도 없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