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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비극에 대한 예의

등록 2016-04-07 20:11수정 2016-08-09 14:51

주원규의 다독시대
세월호, 그날의 기록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지음/진실의 힘 펴냄(2016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2년 전 4월16일. 그 이후의 시간 동안 우리의 모든 것은 푸른빛일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2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를 지배해오던 짙고 아득한 푸른빛은 시리도록 차갑고 무섭도록 맹렬한 비명 같은 것이었다. 너무 빠르게 망각해버린 세상을 향한 절규, 700일 가까이 지나도록 문 앞에서만 서성거리며 진실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조차 망설이는 지독함에 대한 애원이 우리 모두를 철저히 절망할 수밖에 없는 차갑고 푸른빛으로 메워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는 2014년 4월16일을 도리 없는 슬픔과 고통의 이름으로 새겨야 한다. 더없이 차가운 바다 속으로 말없이 가라앉은 우리 가족, 우리 아이들의 진실에 대해 제대로 된 항변조차 못 하는 비극을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 앞에서 뻔뻔스럽게 쏟아내는 무가치한 망언들 또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단언컨대 단 한순간도 제대로 된 진실과 마주하지 않는 국가라는 이름의 무정한 짐승, 그 야만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책의 기능, 또는 역할은 그 사회성이나 독자와의 관계에 의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사회적 행위로서의 책의 역할은 대사회적 관계에서 벌어진 불충분한 수렁의 틈을 메워야 할 증언의 의무로 작동되어야 옳다. 2014년 4월16일을 기억하기 위한 기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끔찍한 고통 앞에 선 가감 없는 기록과 증언은 그날의 비극을 있는 그대로 소환해내는 절대의 힘으로 기능한다. 기록과 증언의 취합은 비극을 날조하거나 자기권력의 과시수단, 권력의 재생산 도구로 다룰 수 없음을 분명히 해둔다. 차갑고 시린 고통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복원하는 기록과 증언의 가치를 담은 책은 끔찍한 무관심으로 반복되는 비극의 악순환을 멈춰 세우는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로 항존하는 것이다.

비극의 현재진행형인 4월16일. 세월호의 아픔 앞에 채 아물지 않은 진실의 상흔을 기록하고 증언한 결과물이 한 권의 책으로 상재되었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 그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어린 자녀를 잃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비극의 당사자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심장 깊이 파고든 비극을 피하지 않고 다시 한번 복기했다. 그들이 말하는 진실의 육성은 무관심과 권태, 일상의 핑곗거리 속으로 도피해버린 우리에게 지독한 수치의 기억을 환기시켜 준다. 그리고 다시금 비극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 성찰하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수치의 기억을 어설픈 관심끌기나 시류에 편승한 유사기념물로 대치하려는 야비한 기억들이 한국 사회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그러한 야비함 앞에서 다시 한번 분노해야 할 준비가 요구된다. 세월호의 비극을 조롱하는 영혼 없는 심장들의 망언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사회적 비극을 재료 삼아 떠들어대는 입들에 대한 분노 역시
주원규 소설가
주원규 소설가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누가 그 입들이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그 입들은 자신이 누군지 모를 테니까. 비극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지, 차가운 아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있는지 그 입들은 정녕 모를 것이다.

주원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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