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거대 문예지들의 변화와 공백 틈새, 소집단 운동들 ‘활짝’

등록 2016-04-07 20:18

표절과 문학 권력 논란을 거친 한국 문학판이 기존의 주요 문예지들 중심 질서에서 벗어나 다양한 소집단 운동들로 재편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서울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신경숙 표절 관련 긴급토론회 장면. 김진수 <한겨레21> 기자 jsk@hani.co.kr
표절과 문학 권력 논란을 거친 한국 문학판이 기존의 주요 문예지들 중심 질서에서 벗어나 다양한 소집단 운동들로 재편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서울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신경숙 표절 관련 긴급토론회 장면. 김진수 <한겨레21> 기자 jsk@hani.co.kr
‘더 멀리’ ‘악스트’ ‘쓺’ 등
구질서 개편과 신질서 등장
반년간지 ‘쓺’ 기획으로 짚어

-문학의 이름으로 2016년 상권

권혁웅 외 지음/문학실험실·1만8000원

지난해의 표절과 문학권력 논란은 주요 문예지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한국 문학판에 커다란 균열을 불러왔다. <창작과비평> <문학과사회> <문학동네> 등 ‘3대 문예지’ 편집진이 일제히 세대교체를 이루었고, <세계의문학>은 40년 세월을 뒤로한 채 역사 속으로 편입되었다. 그 변화와 공백의 틈새에서 새로운 문예지와 문학 운동 들이 나타났다. 이 새로운 잡지 및 운동 들은 기존 문예지들과 달리 개성이 뚜렷하고 소수 마니아 독자를 겨냥하며 대부분 거대 출판자본에서 독립되었다는 특징을 공유했다. 그중 하나인, 사단법인 문학실험실의 반년간지 <쓺-문학의 이름으로> 2호(2016년 상권)는 ‘문학의 새로운 거주방식을 찾아서’라는 기획을 통해 한국 문학의 이 새로운 움직임들에 주목했다.

“2016년 한국 문학의 공간은 그것을 구획하던 구질서의 상실과 개편, 다른 방식으로 한국 문학을 규정하겠다는 신질서의 등장, 익숙하다고 여겨졌던 장소성의 사라짐과 새로운 표지의 출현을 맞이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서희원은 이런 말로 소집단 운동이 출현한 맥락을 요약했다. 그는 시인들의 잡지 <더 멀리>와 소설 전문 격월간지 <악스트>, 실험과 전위를 지향하는 반년간지 <쓺>, 소설 및 평론 공동체 ‘후장사실주의’, 희곡 창작 집단 ‘독’을 대상으로 삼아 이들이 표방한 것, 이루거나 이루지 못한 것, 성취와 한계를 두루 짚었다.

김현, 강성은, 박시하 시인이 만드는 격월간 시 전문지 <더 멀리>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대중적 모금 방식으로 출발했다. 2015년 4월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5호를 발행했으며, 호당 제작 부수는 500부에 정기 구독자는 140여명 정도다. 출판 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시인들이 직접 만드는 만큼 “약간의 촌스러움과 소박함”은 불가피한데, 발행 주체들이 고민하는 대목은 정작 따로 있었다.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를 아우르며 등단·비등단을 나누지 않”겠노라 공언했지만 “이미 ‘좀 쓴다’고 몇몇 문예지들로부터 합의되고 호명된 젊은 작가들에게 <더 멀리>도 기울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2015년 7·8월호로 창간한 <악스트>는 중견 문학출판사 은행나무에서 발행한다는 점에서 여느 소집단 잡지들과 다르다. 그러나 “기존 문예지가 중요하게 여기고 있던 문학에 대한 비평적 기능을 최소한으로 하고” ‘매혹’과 ‘쾌락’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움직임들과 궤를 같이한다. ‘착한’ 가격(2900원) 덕분일 수도 있지만 <악스트>는 일단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서희원은 “‘쾌락’은 경우에 따라서는 그 자신에게 날카로운 위험을 가할 수 있는 양날의 칼, 아니 ‘도끼’”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문학과사회> 편집위원이나 주요 필자였던 이인성·김혜순·성민엽·정과리 등이 ‘김현 문학 정신의 회복’을 표방하며 내는 <쓺>에 대해 서희원은 반대중주의적 엘리트주의를 경계한다. 이들의 스승인 작고한 평론가 김현 자신 “문학의 순수주의” “의도된 난해성”을 경계하며 ‘문학적 민주주의’를 추구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우리’와 ‘그들’의 차이를 강화하고 배제하는 방식보다는 ‘문학의 이름으로’ 맺어지는 민주주의적인 연대와 우애를 기반으로 하는 경쟁”을 그는 제안한다.

‘후장사실주의’ 멤버인 소설가 정지돈은 “후장사실주의에는 희망이 없다. (…) 우리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주장하는 걸 우습게 생각하거나 거짓 주장을 한다”고 썼다. 한편 희곡 창작 집단 ‘독’은 “동시대성을 가진 희곡을 표방하며 문학과 연극성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창작극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서희원은 전자를 문학 내부의 부정성과 반작용으로, 후자를 긍정성과 작용으로 풀어서 이해한 다음, 소집단 운동들의 “이러한 기괴한 부조화와 조합을 통해 가능해지는 충돌과 이 갈등의 폭발을 통한 견고한 시스템의 파괴”가 한국 문학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글을 마무리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