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디컬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의 한 장면. <나는 왜 늘 아픈가>의 지은이 구토 박사는 하이테크 의료장비를 드라마 제작진과 의사가 좋아하지만 환자에게 꼭 좋은 것도, 그만큼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과잉 고가 검진’ 비판하고
환자 되어 병원 문제점 폭로
의료체계 성찰하는 의사들
환자 되어 병원 문제점 폭로
의료체계 성찰하는 의사들
크리스티안 구트 지음, 유영미 옮김/부키·1만4800원 환자가 된 의사들-고장난 신들의 생존에 관한 기록
로버트 클리츠먼 지음, 강명신 옮김/동녘·1만9000원 “쉰이 내일모레라니!” 독일의 까칠한 신경과 의사 크리스티안 구트는 중년의 관문, 건강검진을 하기로 한다. 마뜩지 않지만 ‘예방이 최선’이라는 현대 의학의 신조와 의학 저널이라는 ‘경전’의 가르침에 굴복한 것이다. 병원에서 온갖 힘든 검사를 마친 뒤, 해방감에 와인을 들이키며 그는 생각한다. 오래 살려고 맛있는 음식 먹기, 게으른 쾌락 같은 생활을 포기하고 금욕적으로 살아야 할까? 이 질문에서 <나는 왜 늘 아픈가>는 출발한다. 지은이는 ‘건강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깨부수기로 작정한 사람 같다. 예컨대 ‘달리기 신화’를 보면, 35년간 일주일에 2시간 반을 조깅해서 늘어나는 수명은 남성 평균 6.2년, 여성은 5.6년이다. 달리는 데 드는 총 시간은 합하면 꼬박 반년이나 된다. 6년을 더 살려고 인생의 반년을 지루하게 뛰면서 보내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물론 재미있어 달렸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2009~2010년 신종플루(H1N1) 유행 당시 독일 사망자는 253명. 매년 일반독감으로 사망하는 환자수 5000여명에 견주면 5% 수준이다. 신종플루 백신 제조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2009년 올린 수익은 63억 유로, 전년도보다 20%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예방접종은 실효성이 과장되어있고, 청결 강박이나 감염에 대한 걱정 또한 비이성적으로 과열 되어있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건강검진과 과잉 진료도 도마 위에 오른다. 50대 3명 중 1명이 이미 몸 속에 암세포가 있지만 ‘미니 암’은 대부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건강검진 때문에, 자궁경부에서 천천히 자라는 암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되는 단계에서 “절제해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건강에 대한 쓸 데 없는 염려와 강박은 줄이고, 노화와 죽음을 인정한 뒤 주어진 삶부터 충분히 누리자는 제안이다. 현행 의료체계를 비꼬는 냉소적인 표현이 통쾌하지만 ‘백인 중산층 이성애자 남성’이란 지은이의 한계 탓일까, 동성애자·여성을 ‘과잉 풍자’하는 것을 넘어 비하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툭툭 불거지는 생물학적 결정론도 독자들의 ‘분노 게이지’를 높일 요소로 잠복해 있지만, 이 점을 ‘백신’ 삼는다면 건강 강박에 대한 신선한 처방으로 유쾌하게 읽을 수 있겠다. <환자가 된 의사들> 또한 정신과 교수인 지은이 로버트 클리츠먼이 겪은 ‘환자’ 경험담에서 시작한다. 9·11테러로 여동생을 잃고 우울증에 시달린 지은이는 “환자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우울증에 처박히는 경험을 말로 표현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고 말한다. 그는 카를 융의 ‘상처 입은 치유자’ 패러다임을 설명하며 ‘아픈 의사’들이 고통을 겪고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가능할지 살핀다. 무려 70명의 ‘의사-환자’를 심층 인터뷰한 이 질적 연구는 전례 없는 의료인류학 보고서다. 푸코의 지적처럼, 의사들은 다년간 지독한 수련과 사회화를 거치며 ‘권위주의 에토스(집단의 특유한 관습)’를 강화해왔다. 의사가 환자가 되자, “갑자기 한 계단 내려가는” 경험을 하며 위계가 바뀌었다. 에이치아이브이(HIV) 환자인 동성애자 의사는 주치의의 편견을 걱정하며 낙인과 차별에 직면했다. 정신질환을 앓는 의사는 환자가 되는 일을 더 강력하게 거부했다. 환자에게는 교환수를 거쳐야 하는 전화통화도 병원의 장벽 가운데 하나였다. 의료보험이 관료적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보상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사실, 경험많은 의사의 위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는 의사-환자들도 있었다. 몇주씩 조직검사를 애타게 기다리거나 병원에서 ‘대기’하는 것이 고통이라는 점을 실감했다. 의료과실도 더 많이, 예민하게 인지했다. 의료 시스템 내부인으로, 환자가 된 의사들의 진술은 현재 의료화 양상에 대한 생생한 비판과 죽음 앞에 선 전문가들이 겪는 실존적 고통을 동시에 증명한다. 환자와 주변에 헌신적이던 의사-환자 몇몇은 인터뷰가 끝난 뒤 결국 세상을 떴다. 지은이는 ‘아픈 의사’들이 ‘상처입은 치유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스템의 변화를 제안하며 말한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환자가 될 것이다.” 의사들의 ‘의료 체계 고발’은 이렇게 의료화된 삶 자체가 최선일 수 없다는 성찰과 맞닿아 있다. ‘3분 진료-고가 검진 쌍끌이’로 악명 높은 한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와 개선점을 후련하고 솔직하게 보여줄 국내 전문가 저자들의 탄생도 기대하게 된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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