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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경제 ‘약팔이’는 넘치는데

등록 2016-04-14 20:31수정 2016-04-14 21:46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세계를 뒤흔든 경제대통령들
유재수 지음/삼성경제연구소 펴냄(2013)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은 언젠가 팔이 하나 뿐인 경제학자를 찾아달라고 측근에게 호소한 적이 있다. “한편으로는, 다른 편으로는 (on the one hand, on the other)” 하는 경제학자의 모호한 조언에 진절머리가 난 것이다.

13일 치러진 20대 총선은 정책이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은 ‘맹탕선거’였다. 경제가 최대 이슈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한국판 양적완화’나 ‘최저임금 인상’을 잠시 얘기하다 말았다. 이렇게 정책에 둔감해진 것은 지난 2012년 총선과 대선의 학습효과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복지 논쟁도 꽤 했고 여·여당과 후보들이 약속도 많이 했지만 선거가 끝난 뒤 거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런 ‘허언’의 세월에 “증세없는 복지”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신념이 도드라졌다. 납세자의 부담 증가 없이 서민의 복지혜택을 늘릴 수 있다는 고집인데, 경제가 본디 선택의 문제라는 점을 애써 외면하는 듯 하다.

선택의 문제에 경제학자는 뜨뜻미지근한 조언을 내놓고도 마음이 편할 수 있지만, 정치가나 정책 결정자의 미덕은 결단을 하고 실행하는 데 있다. 경제관료 유재수씨가 쓴 <세계를 뒤흔든 경제대통령들>은 경제정책이 무기력한 것만은 아니며 강한 의지와 통찰력이 있으면 세상을 크게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 예가 재무장관으로서 엄청난 정치적 저항을 이겨내고 영국 복지국가 시스템의 초석을 놓은 로이드 조지다. 보수당에서 정치를 배웠지만 산업혁명이 초래한 노동자 계급의 비참함을 치유하지 않으면 체제존립이 어렵다고 본 그는 급진적 개혁의 리더가 된다. 전면적인 복지제도 도입을 구상하며 재원은 개발이익의 20% 환수를 포함한 토지세로 마련하는 내용의 ‘국민의 예산’을 1909년에 제출한다. 의회가 반대하자 “이것은 전쟁예산이다. 즉 빈곤과 무관심을 상대로 한 전쟁예산”이란 설득을 5시간에 걸쳐 이어간다. 그럼에도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으로 구성된 상원에서 예산안이 부결되자 의회 해산과 상원의 예산 비토권 제한으로 맞서 마침내 통과시킨다.

노령연금을 도입할 때도 야당은 군함 건조에 먼저 돈을 써야 한다고 반대했다. 사실 독일이 군비를 늘려가는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복지냐 안보냐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쉽지 않았다. 로이드 조지는 해군의 계속되는 군함 건조 압력을 피하려면 독일과 긴장 완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독일을 전격 방문한다. 재무장관으로 매우 특이한 행보였고 실재 소득이 없었지만, 그의 복지제도 확충 의지가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국민의 예산’으로 복지재원을 확보한 로이드 조지는 건강보험과 실업보험을 잇따라 도입하고 국민연금보험법도 추진한다. 이 험난한 정치적 투쟁에서 로이드 조지를 지원한 이는 상무장관 윈스턴 처칠이다. ‘겁나는 쌍둥이’로 불린 이 둘은 나중에 수상에 올라 각각 1, 2차 세계대전에서 단합된 국민의 힘을 바탕으로 승리를 일군다.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전략 부국장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전략 부국장
사실 로이드 조지나 처칠을 포함해 이 책에 소개된 18명의 정책 결정자를 보면 경제정책이 딱 부러지게 성공하는 예는 별로 없다. 단기에 욕을 먹고 장기에 좋은 평가를 받거나, 그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경제정책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고 정답이 없는 게임이다”. 그럼에도 정확히 현실을 진단하고 나라가 가야할 방향을 향해 몸을 던진 ‘경세가’들이 이 책에 있다. 우리에겐 그런 사람이 있는가?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전략 부국장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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