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다시 이사해 들어온 고향 집을 배경으로 김용택 시인이 포즈를 취했다. 가운데 기와집이 옛집이고 오른쪽이 살림집, 왼쪽이 서재 겸 강당 ‘김용택의 작은 학교’다. 멀리 그가 심은 느티나무와 섬진강도 보인다.
김용택 시인, 20년만의 귀향
섬진강변 임실 진메마을로 이사
살림집 옆에 ‘작은 학교’ 만들어
학생들 책읽기·글쓰기 가르치고
찾아오는 손님들과도 얘기 나눠
“놀 수 있는 공간이 생긴 셈이죠”
섬진강변 임실 진메마을로 이사
살림집 옆에 ‘작은 학교’ 만들어
학생들 책읽기·글쓰기 가르치고
찾아오는 손님들과도 얘기 나눠
“놀 수 있는 공간이 생긴 셈이죠”
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 진메마을은 김용택(68) 시인의 고향이자 그의 절창 ‘섬진강’의 무대이기도 하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라 시작하는 이 시 덕분에 마을은 유명해졌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김용택 시인과 섬진강을 만나러 전국에서 많은 독자가 찾아온다. 마을 입구, 시인이 청년 무렵 심은 느티나무 아래에는 ‘김용택 시인 생가’ 표지판도 세워졌다.
김용택 시인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여기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덕치초등학교와 인근 분교 평교사로 38년간 봉직한 뒤 2008년 교단을 떠났다. 결혼 뒤에도 고향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1996년 아내와 두 아이가 전주로 이사를 나간 뒤 고향과 전주를 오가며 생활하던 그는 2008년 전주 식구들과 살림을 합쳤다.
그렇게 떠났던 고향 집에 시인이 돌아왔다. 지난 14일, 시인 부부는 20년 전주 살이를 정리하고 진메마을로 다시 이사해 들어왔다. 연로한 어머니는 요양원에 모셨고 장성한 자식들은 품을 떠난 지 오래라서 식구라고는 부부 단둘로 단출했다. 크고 작은 트럭 세 대에 실린 가구며 집기, 책과 책장 등은 고향 집 뒤에 나란히 들어선 살림집과 서재에 나뉘어 부려졌다. 서재에는 ‘김용택의 작은 학교’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가 고향 집과 집 뒤 터를 임실군에 기부채납했고 농림축산식품부와 임실군이 예산을 지원해서 새로 집을 지었어요. 냉정하게 말하면 저는 관리자인 셈이죠. 하하. 고향 집은 자료관처럼 보존하고, 서재에서는 찾아오는 독자도 만나고 주민들과도 이런저런 모임을 할 생각입니다.”
강진 버스터미널에서 덕치면사무소와 덕치초등학교를 지나 진메마을 쪽으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김용택의 작은 학교’ 안내 표지판도 걸렸다. 이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칠까.
“동네 앞 강변이 자전거길이기도 해서 평일에도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주말에는 버스 여러 대로 사람들이 와서 손님들 응대하느라 하루종일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예요. 그분들 만나서 자연 얘기며 농사 얘기, 마을 얘기, 문학 이야기를 하며 놀 수 있는 공간이 생긴 셈이죠. 자연과 동네 전체가 학교이고 마을이 서재이자 책이 되는 겁니다.”
20년 만의 귀향인 만큼 마을 주민들과 이웃들을 위한 일도 궁리하고 있다.
“저희 동네에 열두 가구 스물여섯 명이 사는데 그 중 초등학생이 네 명입니다. 그 아이들과 노는 시간이 많아질 거예요. 인근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도 글쓰기와 책읽기를 가르칠 생각입니다. 좀 시간이 지나면 다른 지역에서 놀러오는 아이들에게도 글을 써 보게 하려구요. 잘 쓴 아이에게는 상품으로 제 책도 나눠 주고요. 서재의 책은 마을 사람들과 탐방객들에게 도서관으로 개방할 생각입니다.”
이삿짐이 부려지는 동안 이광모 감독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촬영지 구담마을 쪽으로 드라이브를 했다. 도중에 들른 천담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있자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부부가 시인을 알아보고 멈추어 인사를 했다. 인천에서 온 나은정·신윤호 부부였다. 3박4일 일정으로 영산강과 섬진강을 종주하는 중이라고 했다. “선생님 시 ‘섬진강’을 읽고서 섬진강을 꿈꾸었다. 정말 멋진 곳에 사신다”고 나은정씨가 인사를 건네자, “산벚꽃이 한창 피어나는 지금이 정말 좋을 때”라고 시인이 말을 받았다. 나씨가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말에 시인이 조언을 건넸다.
“제가 이 산을 평생 봐 왔는데도 볼 때마다 늘 새로운 게 보입니다. 글쓰기를 가르칠 때도 저는 그 점을 강조해요. 자연이든 사람이든 자세히 보면 새롭다는 거죠. 글쓰기란 세상을 자세히 보는 눈을 길러 주는 거예요.”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시인은 한가지 계획을 세웠다. 부인과 각자 일기를 쓰는 것이다. 삼례시장에 가서 잡종개 한마리를 사다가 기를 생각도 하고 있다. 개를 데리고 아침마다 강변을 거닐 생각에 그는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고 했다.
“집의 정면이 바뀌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생각도 바뀐다고 믿습니다. 고향 집에서 강과 산을 마주하고 있으면 한결 고요하고 적막하고 한가로워질 것 같아요.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저런 동네 일과 집 안팎 일들을 챙기느라 무척 부지런해질 것 같기도 해요. 이렇게 사는 게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임실/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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