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의 시집 <녹턴>은 이별을 사랑의 종말이 아니라 그 완성이자 새로운 시작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선우 다섯번째 시집 ‘녹턴’
따뜻한 이별은 어떻게 가능한가
“시는 진혼가이자 사랑 노래”
따뜻한 이별은 어떻게 가능한가
“시는 진혼가이자 사랑 노래”
김선우 지음/문학과지성사·8000원 김선우의 다섯번째 시집 <녹턴>은 ‘사랑 이후’를 노래한다. 그 노래의 배경에는 꽃잎이 흩날린다. 시인이 ‘花飛, 그날이 오면’과 ‘花飛, 먼 후일’을 시집의 처음과 끝에 배치한 데에는 분명 까닭이 있으리라. 시인은 ‘花’(꽃 화)와 ‘飛’(날 비)를 한자어만으로 표기했는데, 흩날리는 꽃잎의 형상과 의미를 표현하기에 그쪽이 더 낫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길 끝에 당도한 바람으로 머리채를 묶은 후/ 당신 무릎에 머리를 대고 처음처럼/ 눕겠네(…)/ 花, 飛, 花, 飛, 내 눈동자에 마지막 담는 풍경이/ 흩날리는 꽃 속의 당신이길 원해서/ 그때쯤이면 당신도 풍경이 되길 원하네”(‘花飛, 그날이 오면’ 부분) “그날이 돌아올 때마다/ 그 나무 아래서/ 꽃잎을 묻어주는 너를 본다// 지상의 마지막 날까지 너는 아름다울 것이다/ 네가 있는 풍경이 내가 살고 싶은 몸이니까”(‘花飛, 먼 후일’ 부분) ‘그날이 오면’과 ‘먼 후일’이라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사뭇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제목, 본문에 나오는 낱말 “처음처럼”과 “마지막” 그리고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눕는 행위와 꽃잎을 묻는 행위 사이의 차이는 두 시를 각각 ‘도래할 사랑’과 ‘끝난 사랑’의 노래로 읽도록 한다. 시집의 첫 시와 마지막 시라는 순서 역시 그런 해석을 부추긴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사랑에 관한 시인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시인에게 사랑의 시작과 끝은 명확히 구분되거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어째서 그러한지 확인하기 위해, 아름다운 이별 노래 ‘이런 이별1월의 저녁에서 12월의 저녁 사이’를 먼저 읽어 보자. “그렇게 되기로 정해진 것처럼 당신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오선지의 비탈을 한 칸씩 짚고 오르듯 후후 숨을 불며./ 햇빛 달빛으로 욕조를 데워 부스러진 데를 씻긴 후/ 성탄 트리와 어린양이 프린트된 다홍빛 담요에 당신을 싸서/ 가만히 안고 잠들었다 깨어난 동안이라고 해야겠다.” 시의 첫 연은 섭리와도 같은 사랑의 시작을 노래한다. 그러나 “1월이 시작되었으니 12월이 온다”. 시작된 것은 끝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 이별은 던적스럽거나 매몰차지 않고 우호적이며 평화롭다. “사랑의 무덤은 믿을 수 없이 따스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최선을 다해 사랑했으므로 이미 가벼웠다”는 말에 주목해 보자. 한눈팔지 않는 사랑,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사랑에 비결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별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몸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이별은 사랑의 자연스러운 일부인 것이다. “내가 만진 시간, 당신// 을 사랑하는 일// 에 정성을 다하는 것”(‘게이트리스 게이트’) 또는 “딱 한 철 사랑하다 다음 철에 식을지라도/ 지금 전부인 마음으로 당신을 부르고/ 당신이 굴피나무 우듬지에서 응답”(‘om 4:00, 사랑이 변하는 게 어때서?’)하는, 사랑의 현재성에 대한 찬미가 그처럼 따뜻한 이별의 전제조건이다. “모든 시는 진혼가이자 사랑의 노래”(‘보칼리제, om 0:00’)라고 말할 때에도 시인에게는 사랑의 종말과 현재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시집에 실린 작품 상당수를 점하는 ‘세월호’ 시편들에서 “차갑게 언 아이들이 물속으로부터 떠올랐”(‘그해 봄 처음으로 神(신)을 불렀다’)던 ‘그해 봄’은 애도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주체로 승화된다. “1인칭 복수형이지만 ‘우리’와 다른,/ ‘나들’”(‘詩(시)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유’)이 그런 맥락에서 호출된다. “누군가 아파서 내가 아프다고 느끼는 (…) 第七感(제칠감)”(‘詩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유’)의 보유 여부가 ‘우리’와 ‘나들’을 가르는 기준이다. 그렇게 진혼과 사랑이, 이별과 재회가 한몸이 되는 옴(om)의 시공간에서 이런 노래가 불려진다. ‘사랑 이후의 사랑’이다. “인연 맞는 때가 오면 다시 만날 거예요. 사람으로건 사람 아닌 것으로건 숨결 있는 모든 세상 어느 작은 조각들로든 하아, 강가 모래 속 반짝이는 한 점 비늘 같은 당신을 나는 알아챌 겁니다. 가만히 당신 옆으로 가 한 손을 잡을 거예요. 그때 당신, 나를 알아보길. 왔군요… 그래요…”(‘보칼리제, om 0:00’ 부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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