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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400년 전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만났다면

등록 2016-04-21 20:44

400년 전 앞서거니 뒤서거니 타계한 세르반테스(왼쪽)와 셰익스피어. 근대문학의 문을 열어젖힌 두 문호의 작품들은 오늘날도 깊은 울림을 준다.  <한겨레> 자료사진
400년 전 앞서거니 뒤서거니 타계한 세르반테스(왼쪽)와 셰익스피어. 근대문학의 문을 열어젖힌 두 문호의 작품들은 오늘날도 깊은 울림을 준다. <한겨레> 자료사진
1616년 4월23일 타계한 두 문호
400주기 맞아 평전과 연구서 발간

자료 부족 극복한 셰익스피어 평전
광기로 감춘 ‘돈키호테’ 전복적 성격

현대적 자의식과 민중 지향에서
두 작가 작품 ‘지금 여기’ 되살아나
세계를 향한 의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민음사·2만5000원

돈키호테를 읽다
안영옥 지음/열린책들·1만8000원

4월23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다. 여기에는 몇가지 배경이 있는데, 이날이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타계한 날이라는 사실 역시 중요하게 고려되었다. 두 나라의 역법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와 스페인 소설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1547~1616)는 1616년 4월23일이라는 같은 날짜에 삶을 마감했다.(세르반테스가 하루 먼저 죽었다는 설도 있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400주기에 맞추어 두 문호의 삶과 문학을 다룬 책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되었다. 미국의 영문학자 스티븐 그린블랫이 쓴 <세계를 향한 의지>와 스페인문학자 안영옥 고려대 교수의 저서 <돈키호테를 읽다>가 그것이다.

<노튼 영문학 개관> <노튼 셰익스피어> 편집을 맡았고 “오늘날 가장 중요한 셰익스피어 연구자”라는 평을 들으며 권위있는 홀베르상을 받은 그린블랫의 2004년작 <세계를 향한 의지>는 셰익스피어의 삶과 문학을 다룬 평전이다. 유아 세례와 결혼 및 사망 기록, 유언 그리고 몇 건의 소송 관련 서류 말고는 행적을 알려주는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쓴 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라는 식의 음모론적 주장까지 난무하는 상황에서 번역본으로 700쪽 가까운 두툼한 평전을 써낸 집요한 열정이 놀랍다. 지은이는 셰익스피어 시대 영국 사회상과 당대인들이 남긴 기록 그리고 그의 작품들로 생애사의 공백을 메꾸는 방식을 택한다.

셰익스피어가 고향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의 공립 문법학교에 다녔으리라는 사실부터가 순전히 추정일 뿐이다. 십대 중반에 학교를 그만두었을 그는 열여덟 나이에 여덟살 많은 앤 해서웨이와 결혼하며(결혼 6개월 뒤에 첫딸이 영세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서는 ‘속도위반’), 1580년대 중후반께 가족을 고향에 남겨둔 채 런던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것으로 짐작된다.

20만 인구를 품고 약동하는 거대 도시 런던에서 배우와 극작가라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셰익스피어가 아치형 대문에 전시된, 장대에 꽂힌 반역자들의 머리에서 “경고와 지침”을 얻었으리라는 추정은 흥미롭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종파 대립과 왕권을 둘러싼 각축 등으로 혼란스럽던 상황에서 ‘위험 분자’로 찍히지 않겠다는 의지가 친필 서한이나 원고, 장서 같은 자료의 의도적 말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리어왕> <오셀로> <헛소동> 같은 작품들에 묘사된 고문 장면이 ‘장대에 꽂힌 머리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은이는 본다.

셰익스피어가 런던 생활을 시작한 무렵 극단들은 순회공연 대신 도시의 대중 극장을 무대로 삼는 식으로 활동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1년 내내 손님들을 끌어모으자면 많은 공연 레퍼토리가 필요했다. “극작가로서 일을 시작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시기였다.” 1587년 동갑내기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의 <탬벌레인>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셰익스피어가 이 연극을 관람한 것은 확실하며, 아마 다시 보고 또 보러 갔을 것이다.” ‘말로라는 자극제’는 극작가 생활 초년기 셰익스피어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말로의 흔적을 진하게 지닌 첫 작품 <헨리6세>로 큰 성공을 거둔 셰익스피어는 대학 출신 또래 극작가 집단의 일원으로 편입되며, 말로와 이들이 거의 모두 요절한 1593년 이후 “셰익스피어에게는 사실상 경쟁자가 없었다”.

셰익스피어의 시적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소네트(14행 정형시) 154편은 사우샘프턴 백작 및 ‘다크 레이디’와 셰익스피어의 애정 관계를 담은 전기적 자료로 받아들여진다. 자기애에 빠져 결혼을 주저하는 청년(사우샘프턴 백작으로 짐작되는)에게 생식과 번성을 권유하는 주제로 시작한 소네트 연작은 이내 아름다운 청년을 향한 연모의 표출로 나아간다. 그러나 “127번 소네트에서부터 시인은 아름다운 청년에게만 집착하던 그의 강박적 관심을 돌리고, 그 대신 주로 욕망과 혐오로 뒤얽힌 감정을 그의 여자 애인에게, 검은 눈과 검은 머리카락과 왕성한 성적 욕구를 가진 정부(情婦)에게 집중하여 쏟아붓는다”.

셰익스피어는 열한살짜리 아들 햄넷을 잃은 슬픔을 <햄릿>에서 내면의 폭발로 승화시켰으며, 1603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스코틀랜드 출신 국왕 제임스1세의 든든한 지원 아래 예술적 평판과 상업적 성공을 아울러 획득했고, 평생 가장 사랑했던 여성인 맏딸 수재나에게 말년을 의탁했다. “그는 삶이 그에게 내놓은 모든 것들을-사회적 신분, 섹슈얼리티 그리고 종교가 가져다준 고통스러운 위기들-예술적인 용도로 변모시켰고 그 예술을 통해 또한 물질적 이익을 창출하는 것에도 성공했다.”

2014년 각주 840개가 달린 <돈키호테>(전 2권)를 완역해 냈던 안영옥 교수는 <돈키호테를 읽다>에서 <돈키호테>의 표층 구조와 심층적 의미를 친절하게 풀어 설명한다. 이 책에서 안 교수는 특히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인 세르반테스가 정치적 탄압을 피하면서 전복적 메시지를 담고자 불가피하게 우회로를 거쳤음을 강조한다. 주인공 돈키호테를 광인으로 설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소설의 표층에서 돈키호테의 말과 행동은 비웃음의 대상이지만, 광인의 언행이야말로 작가의 진정을 담았다는 것이다. “자유라는 것은 하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귀중한 것”이라거나 “좋은 가문의 부덕한 사람보다 천한 혈통의 덕스러운 자가 더 중시되고 존경받아야 한다”는 말, 고문을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하거나 돈이 없어서 죄수로 몰린 이들을 “사랑하는 형제들이여”라 부르며, 공평한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산적에게 공감하는 등의 행동은 확실히 혁명적이다. 소설 말미에서 정신이 돌아온 돈키호테는 자신의 말과 행동을 후회하고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이것은 “영웅 돈키호테와 그의 행위를 보호하기 위한 책략”이라는 것이 안 교수의 결론이다.

거의 같은 시기를 살다 간 두 문학적 거인이 직접 만났거나 최소한 서로의 존재를 알았을 가능성은 없을까. 셰익스피어의 ‘잃어버린 날들’로 일컬어지는 1585년에서 1592년 사이에 그가 스페인으로 건너갔으며 영국 해군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찌른 1588년을 전후해 첩보 활동을 했다는 설은 흥미진진하긴 하지만 근거는 희박하다. 그러나 말년의 셰익스피어가 후배 작가 존 플레처와 함께 쓴 희곡 <카데니오>는 1612년 영어로 번역 출간된 <돈키호테> 1부 23장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두 대가는 간접적으로 만났다.

최근 영국 주간지 <뉴스테이츠먼>에 기고한 글에서 인도 출신 작가 살만 루슈디는 두 작가의 공통점 몇가지를 꼽았다. 희곡 또는 소설의 허구적 속성을 의식하고 드러내는 현대적 ‘자의식’을 보이며, 하층민 삶에 친숙하고, 도덕적 판단에 매이지 않으며, 희극 아니면 비극 또는 로맨스 아니면 정치·역사물이라는 식으로 단일한 성격을 지니지 않고 동시에 여러 면모를 지니는 총합적인 작품을 쓴다는 것 등이다. 최초의 근대 소설 작가와 영문학의 개척자로 일컬어지는 두 작가가 사후 400년이 되도록 꾸준히 사랑받는 비결의 일부를 루슈디의 글에서 짐작할 수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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