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효서 작가. 사진 해냄출판사 제공
새 장편 ‘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 발표한 구효서 작가
“개인적으로 멜로 드라나마 영화를 좋아해요. 그러면서도 막상 소설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멜로를 시도해봤어요. 사고, 기억상실, 삼각관계 같은 건 전형적인 멜로의 틀이잖아요? 그래도 다 쓰고 나니 좀 더 멜로로 갈 걸 하는 후회가 남더군요. 도구적으로 멜로 요소를 도입했을 뿐 소설에 관한 제 고질을 포기하지 못한 거죠. 다음에는 여자 하나와 남자 둘이 나오는, 좀 더 본격적인 멜로를 쓰고 싶어요.”
중견 작가 구효서(59)가 신작 장편 <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해냄)를 내놓고 26일 낮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올해로 등단 30년을 맞은 그의 20번째 장편이다. 그 사이 중단편집 8권과 짧은 소설집 하나, 단편선집과 산문집 각각 둘에 동화 한권까지 서른권 넘는 책을 내놓았다.
“제가 건너야 할 강이나 내(개울)가 있다 치면 제가 내는 책 한권 한권은 그 물에 놓은 징검돌 같은 것입니다. 글 쓰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한 작품을 딛고 또 다른 작품을 써야 하는 게 작가의 숙명이니까요.”
‘새벽별이…’는 아프리카 말라위를 무대로 두 여자와 한 남자의 엇갈린 사랑과 이별의 드라마를 그린다. 미국으로 입양돼 자란 한국계 여성 수, 성장기 수의 친구였던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 엘린, 그리고 이 두 여성과 차례로 연인 관계를 맺게 되는 케냐 남성 리가 주인공이다. 자신이 ‘구원을 위한 입양’의 대상이었음을 알게 된 수는 ‘주디스 노엘’이라는 이름으로 아프리카에서 비밀리에 선교 입양 단체를 추적하는 일을 하던 중 리를 만나 사랑하게 되지만 테러 혐의가 짙은 사고로 기억과 얼굴을 잃는다. 그 수를 찾아 미국에서 날아온 엘린도 뒤늦게 리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그런 두 사람 앞에 기억을 잃은 수가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면서 수는 리가 한때 자신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엘린과 리의 행복을 깨뜨리지 않고자 침묵을 지킨다. 리 역시, 비록 사고로 얼굴은 바뀌었어도, 수가 예전의 연인 주디스임을 깨닫게 되고, 결국 엘린까지도 두 사람의 지난 관계를 알게 된다. 세 남녀는 모두 이런 사실을 자신만 알고 있다고 믿는 가운데,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신비의 장소 ‘은라의 눈’으로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모두가 ‘지금 이대로 행복하게’라는 소원을 빌지만 결과는 그와는 다르게 나타난다….
“소설은 갈등 구조를 기반으로 삼아 긴장과 격정을 유발하는 식으로 쓰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개 빠른 속도에 의지합니다. 그와 달리 저는 느리면서도 긴장과 갈등을 드러내는 방식을 시도해 보았어요. 아다지오풍으로 느리게 가는 이야기인데, 독자들이 그 안에서 팽팽한 긴장을 느끼게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소설 무대를 아프리카로 삼은 이유에 대해 작가는 “한국인들이 공유하는 감정의 메커니즘이 통하지 않는 낯선 공간에서 공감과 감동의 가능성을 실험해 본 셈”이라며 “거창하게 말하자면 내가 믿어 의심치 않는 신념의 주체가 정말 나일까 하는 질문을 이 소설에서 던져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H6s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해냄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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