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권 주듯 국민에게 일정액 지급
성장동력 기대 불구 재원조달은 숙제”
김교성 교수 논문서 화두·고민 던져
성장동력 기대 불구 재원조달은 숙제”
김교성 교수 논문서 화두·고민 던져
불평등, 특히 소득 불평등의 그림자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지니계수, 10분위·5분위 소득배율, 소득점유율 등 각종 지표는 이 불평등 문제가 해소나 약화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공동체의 존망이 걸린 중요한 사안인데도, 국가는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사회복지학회는 29~30일 부산 벡스코에서 춘계학술대회를 열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김교성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이 시대 복지국가의 쓸모?!’라는 주제 발표문에서 완전고용과 경제성장을 전제로 만들어진 ‘자유주의 복지국가’는 이미 효용성이 다한 만큼 이 문제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고, 요즘 많이 논의되고 있는 ‘임금(소득)주도 성장론’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고 지적한다. 그 대신 김 교수는 경기 성남시가 하고 있는 ‘청년배당’과 비슷한 성격의 ‘기본소득’을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복지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일정 연령대 이상 모든 국민에게 부여되는 참정권처럼 ‘무조건성·보편성·개별성’을 지닌 기본소득의 도입을 김 교수가 주장하는 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기존 복지국가로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복지국가는 “노동-자본-국가 간 합의와 타협의 결과”로 “개인의 생존과 기본적인 생활을 집합적 비용부담의 방식을 통해 보장하는 국가체계”다. 그 바탕에는 생산을 담당하는 표준화된 남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완전고용을 추구하고, 노동력의 유지와 재생산을 뒷받침하는 가부장적 가족 구조에 대한 지지가 깔려 있다. 구호 대상도 당연히 “평균적인 생계 부양자(노동자)와 피부양자(그의 가족)”가 중심이었다. “복지국가는 언제나 노동능력 유무에 따라 노동이 가능한 집단과 불가능한 집단으로 대상자를 구분하고, 노동계층을 중심으로 제도를 설계·운영해왔다.”
‘케인스주의’에 바탕을 둔 이런 체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기술 진보로 자본의 힘이 막강해진 반면, 노동의 힘은 약화됐다. 기술혁신은 일자리, 특히 ‘전형적인’ 노동자의 감소와 탄력적인 시간제 노동자의 증가를 불렀다. 더 이상 대규모로 한데 모여 일하지 않게 되면서 노동자들의 연대와 결속은 느슨해졌고, 경쟁과 갈등 가능성은 높아졌다. 여기에 세계화까지 겹치면서 “자본은 노동자 계급의 협조 없이도 어디서든 값싼 노동력 확보”를 할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복지국가를 지탱하던 전통적인 노동자 ‘계급’은 붕괴하고 말았다.” ‘임금 없는 성장’의 과실이 기업에 집중되는 동안 일부 풀타임 정규직을 제외한 대다수 노동자들의 삶은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다.
게다가 인구구조의 변화로 “노동인구에 의존하는 고령인구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분배 문제는 ‘세대 간 갈등’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남성 부양자를 중심으로 설계된 고전적인 복지국가는 이제 복지급여와 관련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거나 이행할 능력이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주목받고 있는 ‘임금(소득)주도성장론’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 논의는 지난 30년간 지속된 ‘임금안정화’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임금 상승과 실질소득의 증대를 통해 평등한 소득 분배와 내수 진작, 노동생산성의 증대와 경제성장을 이끌어내자는 것이다. 국제적 공조가 이뤄진다면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점에서 ‘글로벌 케인스주의 뉴딜’이라고도 불린다. 이 전략이 성공하려면 노동자들의 임금교섭력이 높아져야만 한다. 그런데 노동의 비중이 줄고, 발언권이 약화된 지금 자본에 맞설 교섭력을 강화할 수 있을까. 임금 인상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도리어 고용 확대를 저해하게 된다는 실증적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노동시간 단축에서 해법을 찾자는 제안도 있지만, 단축된 노동시간만큼 부족한 임금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는 숙제로 남는다.
이 지점에서 김 교수가 지지하는 대안은 기본소득의 도입이다.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에 따르면 “자산조사와 근로에 대한 요구 없이 모두에게 개별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을 말한다. 요컨대 노동의 위상 축소, 사회의 개인화라는 변화에 맞춰 “자원을 ‘개인’들에게 평등하게 분배함으로써 불평등의 수준을 낮추고 총수요를 확대·창출해 경제성장을 주도”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몇몇 복지선진국들에선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 스위스는 오는 6월 ‘기본소득 300만원’ 지급을 도입하는 내용의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했고, 핀란드는 올해부터 2019년까지 완전기본소득과 부분기본소득에 관한 4가지 방안을 비교하는 실험을 시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도입을 염두에 두면 갈 길은 멀고 험하다. 무엇보다 제도 전환에 필요한 시간과 재원 확보가 가장 큰 문제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세금 인상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그러했듯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노동윤리의 단단한 굴레” 또한 넘기 힘든 장벽이다. 기본소득을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해선 곤란하며, (…) 하나의 정책 ‘묶음’으로 활용하는 편이 바람직해 보인다”거나 “자발적 공동체 혹은 ‘작은’ 단위인 지역사회 내 일상의 정치에서 변화의 바람을 기대할 수 있을까”라는 김 교수의 언급은 이런 고민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유의미한 실험’으로서 성남시의 청년배당에 각별한 관심을 표하고 있다.
이번 발표문은 올해 사회복지학계에 던지는 화두에 해당한다. 기존 복지국가의 틀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점은 이미 학계에서도 공인되고 있는 만큼 대안을 찾는 노력의 하나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지난 8일엔 국회입법조사처가 ‘기본소득 도입 논의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도 오는 6월3일 ‘이제 사회수당을 말하자’라는 주제로 기본소득 문제를 본격 논의하는 학술대회를 연다. 성남시 청년배당에 깊이 관여한 강남훈 한신대 교수가 발표자로 나선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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