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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하루키, 소설을 말하다

등록 2016-04-28 20:56수정 2016-04-29 08:22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35년 만에 ‘문학인생’ 자체 결산
작가의 기초체력·정신자세 강조
문단 향한 섭섭함·비판도 신랄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1만4000원

“소설을 쓰는 것에 관한 내 생각의 (현재로서의) 집대성으로 봐주셨으면 한다.”

1949년생. 육십대 후반이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국내 출간됐다. 작년 10월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지금까지 그가 정면으로 쓰지 않았던 소설론, 작가론, 문예론을 독자에게 말 걸듯 소상히 밝혀 호평받았다. 일본 최대 오프라인 서점인 기노쿠니야가 인터넷 서점에 맞선다는 의도로 초판 10만부 중 90%를 매입하고 유통시켜 출판불황을 타개하는 신선한 기획이란 평을 듣기도 했다.

1979년 등단한 하루키는 성실하게 집필활동을 해온 지난 35년여를 돌아보며 자부심을 숨기지 않는다. 소설 쓰기가 외로운 작업임을 잘 알면서도 “격려의 감촉”을 선사해주지 않았던 문단에 대한 섭섭함과 비판도 군데군데 신랄하다. 팔 근육이 은근히 두드러진 표지의 인물사진이 말없이 웅변하듯, 그는 소설가가 가져야 할 “피지컬”한 면과 강인한 정신자세를 거듭 강조한다.

책의 앞부분은 소설가의 자질과 자신이 소설가로 등단했던 무렵의 생활을 설명했다. 젊은 시절 생계를 위해 7년 동안 재즈카페 경영을 하면서 그는 밤낮없이 일했다고 한다. 빚을 갚으려고다. 처음 그가 ‘하루키표’ 문체를 ‘개발’한 때를 묘사한 부분은 소름 끼칠 정도로 집요한 성격과 작업 방식이 잘 드러난다.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는 문장을 영어로 쓴 뒤 이를 다시 일본어로 “번역”했다. “내가 내 손으로 발견한 문체입니다. (…) 그야말로 새로운 시야가 활짝 열렸다고 할 만한 장면입니다.” 단문, “심플한 단어”, 군더더기를 덜어낸 표현, 리듬감 있는 ‘하루키 스타일’은 이렇게 태어났다.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언어와 문체를 새로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조언한다. 영혼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위험한 작업이기에, 육체적 강인함이 필요하다며 신체 단련도 여러번 힘주어 말한다. 그는 30년 동안 매일 한 시간씩을 달려왔다고 한다.

하루키는 소설 쓰기의 우연성과 의외성을 믿기 때문에 아무리 긴 소설이라도 즉흥적으로 쓰는 편이라고 한다. 글쓰기가 고통인 적도 없었다고 했다. 다만 쓰는 속도와 규칙성은 반드시 유지한다. 장편소설을 쓸 때는 “타임카드를 찍듯이”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장 쓰기를 지킨다. 반년에 3600장을 쓰는 일정이다. 초고를 쓴 뒤엔 제3자에게 읽힌 뒤 끈질기게 글을 고친다. “(소설을 쓰느라) 제정신이 아닌 인간에게 제정신인 인간의 의견은 대체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과정 속에 발명된, 말쑥하고 능숙하게 다듬어진 문장과 세련된 ‘하루키풍’ 도시 정서는 1990년대 중후반 한국 문단에도 ‘아류’ ‘표절’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 속속 등장했을 정도로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1960년대 학원분쟁 뒤 하루키가 느낀 환멸감, 허무감은 80년대 민주화 열기가 식은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도 맞물렸다. 자신의 소설이 외국에서 널리 읽힌 때는 각국에서 격변이 일어나 “사회의 리얼리티가 크게 교체될 때”였다고 하루키는 스스로 분석했다.

문단에 대한 견해도 진지하게 밝힌다. “이건 소설이 아니다”라며 쏟아진 ‘이전 세대’ 문인들의 비판, 인신공격, 혹평 등은 “욕구불만의 발산”이었다고 그는 잘라 말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순문학’ 영향력이 약화되었는데, 이 속에서 터져나온 울분이 자신에게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나 헤밍웨이도 문체 비판과 야유를 받았지만 오늘날 “하나의 스탠더드”가 되었다고 감정이입한다.

하루키의 생각을 좀 더 소상히 알고 싶다면, <현대문학> 5월호에 실린 이 책 출간 기념 인터뷰(일본 문예지 <멍키>(MONKEY) 7권, 2015년 10월15일치에 게재됨)를 함께 보는 것이 좋겠다. 그는 3·11 대지진과 원자력발전소 문제를 언급하며 일본이 시련으로 좀 더 세련된 국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지금 명백히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위기감을 가진다고 밝혔다. 또 우익이 판치는 지금 일본 상황을 우려하며, 자신의 뜻이 잘 전달될 언어와 장소를 만들고 싶다는 심경도 드러냈다.

하루키 소설로 문학공부를 한다는 작가 지망생들을 보며 장탄식을 금치 못하는 한국과 일본 문학인들에게 이 책은 여전히 강력한 우려가 되겠지만, 하루키의 기존 잡문들보다 실용적이고 소설보다 직설적이다. 여전히 위험하고, 그래서 매력적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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