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플라스의 동화 ‘침대 이야기’ 중 버튼만 누르면 간식이 나오는 스낵 침대. 마음산책 제공
실비아 플라스 직접 쓴 동화 세편
딸 아들 기다리며 ‘행복한 상상’
딸 아들 기다리며 ‘행복한 상상’
오현아 옮김/마음산책·1만5000원 햇살 가득한 창가에서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 듣던 이야기만큼 따뜻한 기억이 또 있을까? 아이와 함께 자란 엄마의 이야기나무는 만만찮은 인생에 커다란 버팀목이다. 여기 세 편의 동화가 있다. 아이가 직접 읽기보다 엄마가 아이의 귓밥을 간질이며 들려주면 오래 남을 이야기다. 그림책이 아니어서 취학 전 아이가 읽어 내리기엔 글밥이 자글자글하다. 초등생이라면 세밀한 묘사가 살아 숨쉬는 글맛을 음미하며 읽어도 좋겠다. <실비아 플라스 동화집>이라니?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건 미국의 ‘천재 여성 시인’이자 소설가인 비운의 이름. 서른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실비아 플라스(1932~1963)가 아름다운 운율의 동화를 썼다는 사실이 새롭다. 플라스는 사후에 펴낸 시 전집으로 퓰리처상을 받는 전무후무한 문학적 성취를 이뤘다. 죽기 직전 펴낸 자전적 소설 <벨 자>는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딸 프리다와 아들 니콜라스, 두 아이의 엄마였던 그는 1958년부터 1960년 프리다가 태어날 때까지 자신의 아이들에게 들려줄 동화 세 편을 썼다. 예비 엄마는 “태어날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며 거칠 것 없는 동심을 빛나는 언어로 뀄다. “좋은 동화는 좋은 문학이어야 한다.” 일곱 살 딸을 둔 소설가 정이현씨의 추천사대로다. 일년 열두달 입을 수 있는 자기만의 정장이 갖고 싶은 일곱 형제의 일곱 살짜리 막내 맥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옷만 입을 거야’와 부엌에 사는 두 요정이 요리 기구들의 역할바꿈 놀이를 허용하면서 벌어지는 우스꽝스런 소동을 그린 ‘체리 아줌마의 부엌’, 재미있는 침대 이야기를 시적 운율로 풀어가는 ‘침대 이야기’ 등 세 편이 데이비드 로버츠의 익살스런 연필선 삽화와 함께 책에 실렸다. 작가에게 씌워진 비운의 이미지와 달리 이야기는 마냥 발랄하고 해피엔딩을 향한다. ‘체리 아줌마의 부엌’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커피메이커, 블라우스를 다리는 달걀 거품기, 와플을 만드는 다리미의 ‘미션’은 실패가 예견되지만, 소금요정과 후추요정의 마법 같은 수습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부엌 친구들을 응원했던 아이를 안도하게 만들 것이다. ‘침대 이야기’는 쉬이 잠들지 못하는 아이에게 들려줄 만한 수면동화다. 잠수함으로 변신하는 침대, 별똥별 담으러 화성으로 떠나는 제트엔진 침대, 야금야금 뜯어 먹을 빵 베개가 있고 머리맡에는 자동판매기가 달린 침대…. 양을 세는 대신 ‘이상한 침대’를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꿈나라로 빠져들 것만 같다. 책 뒤편에는 영어 원문을 곁들였다. 원문에는 영문학의 원형을 이루는 ‘마더 구스’(영어권 전래동화)가 슬쩍슬쩍 녹아 있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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