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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창시자 예수’ 도그마 걷어낸 원시 기독교 탐사기

등록 2016-05-05 20:40수정 2016-05-06 10:00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을 상인들이 더럽히고 있다며 유월절 날 그들이 펼쳐놓은 좌판을 모조리 뒤엎어버린다. 이 사건을 그린 렘브란트의 1626년작 <성전에서 환전상을 내쫓는 그리스도>. 예수가 성전 폐지를 주장했다는 신학적 해석도 있지만, 정기문 교수는 예수의 목적이 “유대교의 갱신과 개혁”에 있었다고 본다.  <한겨레> 자료사진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을 상인들이 더럽히고 있다며 유월절 날 그들이 펼쳐놓은 좌판을 모조리 뒤엎어버린다. 이 사건을 그린 렘브란트의 1626년작 <성전에서 환전상을 내쫓는 그리스도>. 예수가 성전 폐지를 주장했다는 신학적 해석도 있지만, 정기문 교수는 예수의 목적이 “유대교의 갱신과 개혁”에 있었다고 본다. <한겨레> 자료사진
어릴적부터 신자인 서양사학자가
그리스도교 생성과정 파헤친 저작

예수도 바울로도 ‘창시’한 적 없고
종파간 대립·변천 통해 생성돼

믿음 지켜낸 바울로 공로 크지만
주류신학의 과대평가는 곡해
그리스도교의 탄생
- 역사학의 눈으로 본 원시

그리스도교의 역사
정기문 지음/길·2만8000원

성탄절 사탕 말고는 도무지 ‘주일학교’의 추억이랄 것이 없는 사람도, 이런 에피소드는 낯설지 않을 성싶다.

모세를 돕기 위해 하느님이 ‘태양아, 머물러라, 달아, 멈추어라’ 했더니 하루 동안 해와 달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다수는 잠시 갸우뚱하곤 넘어간다.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그랬다니까.

예수의 어머니는 ‘처녀’(이른바 ‘동정녀’) 마리아라고 기록돼 있다. 성경엔 요셉이라는 ‘남편’도 나온다. 아무튼 마리아는 임신했고, 하느님의 아들을 낳았다. 그러니 포털에 이런 질문이 걸린다. “예수의 아버지는 누구인가요? 요셉인가요? 여호와인가요? 아니면 둘 다인가요? 예수가 정체성 혼란을 겪지는 않았을까요?” 이런 질문엔 고색창연한 ‘처방’이 있다. “믿음이 약해서다.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라.” 조금 더 나이 든 축들은 생물학적 의문이 앞선다. 성관계 없는 임신이라니, 인공수정도 아닐 텐데 그럼 뭐지? 그래도 대다수는 또 그냥 넘어간다.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그랬다니까.

타고난 ‘반골’일까? 정기문 군산대 교수(서양사)는 그냥 넘어가질 못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던” 그는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커지는 회의와 의심을 학자답게 확장하고 파고들어 <그리스도교의 탄생>이라는 300쪽 넘는 역사서를 써냈다. “이 책에는 신학이 없다.”

자칭 ‘날라리 신자’였던 정 교수의 연구를 고무한 것은 또 있다. 사도 바울로의 편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처럼,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율법에서도 말하듯이 여자들은 순종해야 합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남편에게 물어보십시오.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글줄은 짧았지만, 영향은 끔찍했다. 여성들은 이 몇마디로 인해 수천년간 열등한 종족, 이류 인간으로 취급됐다. 필요에 따라 사악한 존재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근대 초에는 마녀라고 규정하여 수십만 명을 죽이기도 했다.” 여성은 지금도 성직을 맡을 ‘자격’이 없다. 그런데, 정 교수에 따르면, 문제의 구절은 여성들의 교회내 활동에 반감을 품은 “후대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것이지 원래 사도 바울로가 한 말이 아니다.”

통념을 깨는 에피소드로 긴장감을 돋운 정 교수는 이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예수가 그리스도교를 만들었다는 명제는 참일까?”

예수가 활동하던 1세기는 묵시 종말론의 시대였다. 신바빌로니아의 침공으로 유대왕국이 멸망한 ‘바빌론 유수’(기원전 586년) 이후 뿔뿔이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일대에 주로 살던 이들은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심판과 부활 같은, 과거 유대인들에겐 없던 조로아스터교의 이분법적 관념들을 들여와 퍼뜨렸다.

그 영향을 받은 예수는 철두철미 종말론자로 살았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마태복음)는 언명에는 곧 닥칠 심판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집약돼 있다. 그는 ‘예언’이 실현되기 전에 그에 걸맞은 새 질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바리사이파와 율법 논쟁을 벌인 것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상인들의 좌판을 뒤엎은 것도 목적은 “유대교의 갱신과 개혁”에 있었다. 예수 이전에도 적극적으로 이뤄진 이방인 선교는 실상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교회는 2000년 넘게 예수의 탄생과 삶, 말씀과 죽음이 곧 그리스도교의 탄생사라고 가르쳤지만, 예수가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려 했다는 ‘역사적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요컨대, 예수는 당시 유대 땅에서 일어나고 있던 새로운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혁신적인 사상가였던 셈이다.

그런 예수가 죽고 난 뒤 12사도와 제자, 마리아 등 120여명은 ‘메시아’ 예수의 재림을 믿고 선교 모임을 세운다. ‘예루살렘 교회’(교회)의 시작이다. 그러나 단일 대오는 오래가지 못했다. 예수의 위상, 율법 준수, 이방인 선교 등의 문제로 내부 갈등에 빠져든 교회는 ‘히브리파’(유대파)와 ‘헬라파’로 분열된다. 헬라파를 추방하고 교회를 장악했던 히브리파는 다시 극보수 ‘할례당’으로 대체됐다.

이즈음 “당시에는 누구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원시 그리스도교 역사의 거대한 전환점”이 될 ‘사건’이 벌어진다. 이방인 선교의 최전선이던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이방인과의 식사 문제로 베드로와 대립했던 사도 바울로는 외톨이가 되어 쫓겨난다.(‘안티오키아 사건’) 할례당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코린토와 에페소에 새 교회를 세운 바울로는 예수를 신적 숭배 대상으로 삼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를 설파했다. 내친김에 예루살렘 교회와는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다”는 가르침으로 유대교의 원리, 로마의 세속 질서와 단절을 시도했다. 주일 의례, 성찬식, 세례를 만들어 유대교 의식과도 결별했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할례당과 맞서던 바울로는 예루살렘 방문이라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지만 결국 목숨을 잃고 만다.

이것으로 끝이었다면,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됐을 수 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우연한 사건이 바울로파를 부활로 이끈다. 할례당이 서기 66년 ‘유대 대반란’에 참여했다가 괴멸된 것이다.

그리스도교도라는 이름을 처음 얻은 이들은 안티오키아 교회의 신자들이었다. 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을 본 이방인들이 그런 이름을 붙여줬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것은 1세기 후반에 들어서다. “예수도 바울로도 죽을 때까지 자신을 유대교도라고 생각했다.” 바울로파와 사도요한파, 로마교회의 협력과 경쟁, 대립과 변천을 거쳐 ‘정통’ 그리스도교의 모집단이 출현한 것은 1세기 후반에서 180년께. 이들이 2세기 중반 이후 4대 복음서(마태·마가·누가·요한)와 13개의 바울로 서신, <사도행전>, 그밖에 몇 개의 서신을 ‘정경’으로 지정하면서, 비로소 그리스도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탄생한다.

바울로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고, 인간으로 사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고 생각한 점에서 예수의 가르침과는 결을 달리했지만, 그리스도교의 탄생에 상당한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다. “바울로가 위대한 점은 ‘율법에서 자유로운 믿음’을 지켜낸 데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교가 성립되는 과정을 ‘예수-베드로-바울로’로 이어지는 일직선상의 발전으로 설명하는 주류 신학의 주장은 결과로 과정을 정당화하는, 전복적인 곡해에 가깝다고 정 교수는 지적한다. 1947년 모습을 드러낸 ‘쿰란 문서’, 그보다 2년 전에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 등은 원시 그리스도교의 다양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데 왜 예수와 바울로를 그리스도교의 창시자로 떠받드는 주장이 생겨난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기록의 힘’이다. “원시 그리스도교의 세계에서 바울로만큼 글을 잘 쓰고, 그만큼 많은 글을 남긴 사람은 없었다.” 예수에서 멀어질수록, 후대로 갈수록 바울로의 글은 더 자주 인용됐고, “때때로 (없는) 본문을 만들어내기까지” 할 만큼 권위는 높아만 갔다. 여기에 아우구스티누스가 왕관을 씌우고, 마르틴 루터는 아우라를 그려넣었다. 그리하여 “현대 신학은 바울로에 대한 각주에 지나지 않을 정도”가 됐다.

신학적 소양이 없어도 책은 쉽게 읽힌다. ‘20년 독학’의 소산답게 내용은 풍성하고, ‘주일학교 학생’의 문제의식은 도처에서 반짝인다. 그러나 역사서의 경계를 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를 향한 에드워드 기번(<로마제국 쇠망사>)의 신랄한 비평, 버트런드 러셀(<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의 예리한 풍자를 이 책에서 찾는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화와 사실의 구분, 신학과 역사의 분별이 관심사라면 자못 흥미로운 지적 탐사의 길동무가 될 것이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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