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나현영 옮김
포도밭·1만3000원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나현영 옮김
포도밭·1만3000원
인류학자인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1989년 인류학 현장 연구차 방문한 마다가스카르의 아리보니마모라는 시골 마을에서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지역 주민들이 아무도 세금을 내지 않으며 경찰은 도로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이 시골 마을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1980년대 마다가스카르 여러 지역에서는 심각한 재정난 때문에 정부 기능이 멈춰 있는 곳이 많았다. 아리보니마모에서도 주민들은 정부에 항상 불평을 늘어놓으며 마치 정부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이 마을에서 정부 기능은 완전히 정지해 있었다. 마을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도 마을 사람들은 공권력에 의존하는 대신에 자율적으로 대표단을 조직해 문제를 해결했다. 누구나 집단이 대체로 동의한 내용에 대해서 자신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이 경우 나머지는 즉시 모든 일을 중단하고 반대자와 다시 합의할 길을 찾았다.
정부가 기능을 멈추면 무질서와 폭력이 난무하는 비참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감옥과 경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은 통념에 가깝다. 하지만 아리보니마모에서 주민들은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자신들이 무정부 상태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주민들이 인식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을 쓴 그레이버는 2011년 월가를 점거하는 ‘오큐파이 운동’에 참여한 아나키스트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흔히 아나키즘을 ‘이론적으로는 뒤처지지만 열정과 성실로 두뇌를 벌충하는 마르크스주의의 가난한 사촌’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왜곡된 주장이라고 말한다. 그는 프루동, 바쿠닌 같은 19세기 이른바 아나키스트 창시자들도 스스로 자신들이 특별히 새로운 것을 창안했다고 여기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자기 조직화, 자발적 결사, 상호 부조와 같은 아나키즘의 기본 원리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한 인간 행동 양식이라고 말한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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