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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메르스는 왜 ‘사태’가 되었나

등록 2016-05-12 20:30수정 2016-05-17 10:30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
메르스 사태 인터뷰 기획팀·지승호 지음
시대의창·1만6800원
“정부에서는 일선에 있는 개인 로컬병원 의사들에게 어떤 정보나 지침도 주지 않았어요.” “엉뚱한 지침도 있었고요.” “(정부가) 노출자들을 추적 관리하고 있다? 하나도 안 됐어요.”

2015년 봄, ‘메르스 최전방’을 사수했던 의사·간호사들은 이렇게 털어놓았다.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는 작년의 ‘사태’를 성찰하는 의료인들의 기록이다. 책을 쓴 ‘메르스 사태 인터뷰 기획팀’은 의료인 단체, 인권단체, 정당, 학계, 사회운동단체에서 활동하는 의료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작년 7월 첫 모임을 시작해 10월까지 환자를 직접 진료한 임상의사, 예방의학 전문의, 감염내과 전문의 등 여러 의료인을 만나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자세히 물었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씨도 집필진에 함께했다.

경험담은 적나라했다. 현장 의료인들 대부분이 ‘메르스 사태’가 보건당국의 역량과 한국 보건의료 시스템의 민낯을 드러냈다고 개탄했다. 낙타고기를 먹지 말라는 비현실적 경고, 관료주의, 리더십 부재, 합리적 의심 부족, 조직 이기주의…. 무엇보다 한국 보건의료 체계의 관료화 비판이 뼈아프다. 관료들은 ‘의전’과 ‘보고’를 중시했고, 정작 병원 응급실 같은 ‘현장’ 지원은 뒤로 밀렸다는 것이다. ‘윗선’에 보고하느라 구조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세월호 참사와도 여러모로 겹친다.

‘메르스 지침’은 존재했다지만, 사투를 벌이는 병원 현실에는 맞지 않았다. “명색이 의사인데 (…) 아는 것이 없어 답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의사가 여럿이었다. 방호복은 어떨 때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 환자 피검사를 하는 병원 밖 천막에 공간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공포의 도가니’ 속에서 혼란이 거듭됐다. 헌신적인 응급실 의료진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정부 대책을 기다리며 “매일매일 전쟁”처럼 환자를 돌봤다고 한다. 컨트롤타워는, 책임자는 어디에 있었을까? 청와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지방자치단체? 다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고 위기를 관리할 것인가? 여전히 뚜렷하지 않다.

결국 이들의 이야기는 공공병원과 인권 문제로 수렴된다. 감염병을 대처할 수 있는 곳은 공공병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공병원 지원·확충은 좌파 정책이나 정치적 진영논리가 아니라고 인터뷰이들은 거듭 강조한다. 공공병원 경영을 민간병원처럼 평가하고, 의료 취약 계층 환자들에게 돈을 받아 독립채산제를 하라는 정책을 이들은 강력히 비판했다. “국민더러 안전불감증에 걸렸다고 하는데, 사실 국가가 걸린 거죠.”

집필자 중 한 사람인 임석영 가정의학과 전문의(일산현대요양병원 가정의학과 원장)는 전화통화에서 “한국 사회가 제도적으로 메르스를 막은 것이 아니었다”고 잘라 말했다. “개인적으로 감염병에 관심을 가져 온 전문 인력들이 간신히 ‘사태’를 수습했지만, 앞으로는 정부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해 조치를 취하고 시민참여로 사회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답은 ‘현장’에 있었다. 이 책이 감염병을 다룬 어떤 공식적 보고서나 논문 못지않게 힘이 세 보이는 까닭이다. 학계, 의료계는 물론이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관료들이 꼭 봐야 할 책이다. 나아가, ‘메르스 사태’로 본 한국 사회 비평서라 해도 무리가 없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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