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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망해도 국권 되찾아도 관료집단은 그대로…”

등록 2016-05-24 18:54수정 2016-05-24 20:34

[짬] 한국 관료 연구 전문가 안용식 명예교수
“알아주지도 않는데, 나 혼자 죽어라 하고 있네요. 허허.” 안용식(75) 연세대 행정학과 명예교수는 2006년 퇴직 뒤에도 20여 권의 연구서와 자료집을 펴냈다. 모두, 그가 50살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힘을 쏟았던 구한말 이후 한국 관료에 대한 연구물이다. 지난해 말 펴낸 <일제강점기 조선인 관리>(기관·인명별 각 1권)는 두 권 합쳐 2000쪽이 넘는 자료집이다. 일제 때 관료를 지낸 조선인 2만 여명의 임명 내용이 발령시기 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소속, 재직기간과 관등은 물론 일부는 당시 봉급도 확인할 수 있다. 자료 더미와 벗하며 만년을 보내고 있는 안 교수를 지난 17일 서울 공덕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50살이면 나만의 연구 해야 한다”
25년 넘게 ‘조선인 관리’ 조사 몰두
퇴직뒤 10년간 자료집 20여권 출간

최근 ‘일제강점기 관리’ 2천쪽 방대
“식민지배의 주구…‘관료상’ 못찾아”
미군정기 관리 명단 찾는 게 ‘과제’

한국 관료 연구 전문가 안용식 명예교수. 사진 김봉규 선임기자 <A href="mailto:bong9@hani.co.kr">bong9@hani.co.kr</A>
한국 관료 연구 전문가 안용식 명예교수. 사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일제강점기 조선인 관리’에서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을 지낸 엄창섭편을 펼쳤다. 일제 때 조선인으로 총독부 국장을 지낸 이는 엄창섭과 이진호 둘뿐이다. 1912년 평남 강동군 서기(6등)에서 단계를 밟아 전남, 경북 지사를 거쳐 45년 8월 학무국장(1등1급)까지 오른 엄창섭의 이력이 스무 줄의 표에 정리되어 있다. 구체적인 친일행적이 나열되어 있지는 않지만, 일제 강점 34년 동안 승진과 영전을 거듭했던 인사 이력은 그 자체로 많은 걸 말하고 있다.

이 자료집은 그가 93~94년 펴낸 <한국행정사 연구 1, 2>를 보완한 것이다. 당시 그가 참고한 조선총독부 관보엔 20~43년 조선인 출신 하위직(판임관) 관료는 빠져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조선총독부 직원록에서 이 명단을 찾아 수록한 것이다.

안 교수의 전공은 지방자치론과 공기업론이다. 박사 학위는 제1·2공화국 관료 연구로 받았다. 연세대 교수로 임용된 뒤 25년이 지난 90년 무렵 관료 연구에 본격 뛰어들었다. <대한제국 관료사 연구>(5권)를 통해 1895년 갑오개혁 때부터 1910년까지 구한말 관료를 정리했다. 대한민국 관보를 뒤져, 48~67년 관료를 지낸 이들을 <대한민국 관료 연구>(8권)에 실었다. 퇴직 뒤엔 일제 시대 조선인 읍면장·지방관·경찰관·도의회 의원들을 정리한 자료집도 펴냈다.

구한말부터 67년까지 관료 명단을 정리했지만 끝내 채우지 못한 시기가 있다. 바로 미군정 3년이다. 80년 미 서던캘리포니아대 초빙교수 시절 미육군성 도서관까지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군정 때 자료가 있다면 일제 때 조선인 관리가 어느 정도 대한민국 정부에 참여했는지 알 수 있는데 아쉬워요. 이번에 보완한 자료집을 토대로 앞으로 최선을 다해 (대한민국 정부 참여 실태를) 밝혀낼 생각입니다.”

그의 작업은 사학의 영역이기도 하다. “학부 때부터 사학에 관심이 있었어요. 관료사를 연구하면서, 이왕 하려면 누구라도 제대로 정리해야 할 것 아닌가 생각했죠.” 그는 평소 후배 교수들에게 “나이 오십이 되면 전공말고도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걸 찾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런 소신 덕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작업을 두고 “엿과 채찍을 통한 일제 식민지배 실태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엿은 교육이고 채찍은 경찰입니다. 경찰을 통해 핍박하고 교육을 통해 동화시키려 했죠.” 그는 지금 일제 시절 건너온 일본 헌병 자료를 모으고 있다. 이는 채찍 연구에 속할 것이다. “1910~19년 사이 매년 일본에서 헌병 수천 명이 조선에 들어옵니다.”

그는 국권 상실이나 회복 등의 고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굳건한 관료집단의 연속성에 주목했다. “1910년 대한제국 관료가 그대로 총독부로 넘어갑니다. 합방 전 군수가 300여 명이었는데요. 일제가 거의 그대로 군수를 시킵니다. 해방 뒤도 비슷해요. 특히 법관들은 거의 그대로 대한민국 정부로 넘어옵니다. 경찰이나 지방관들 상당수가 자리를 지키지요.”

일제 때 조선인 관료를 거론하는 일은 여전히 예민한 문제다. 친일 논란을 피해가기 힘들다. “행정사 연구 책이 나왔을 때 자유당 시절 장관을 지낸 이의 아들이 전화로 따지더군요. 부친이 일제 때 재판소 서기를 했다는 기록을 두고 명예훼손이라고 했죠. 자료를 토대로 설명하니 이해하더군요.”

하지만 안 교수는 <친일인명사전> 집필에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저서 10여 권 이상이 참고문헌으로 올라 있다. “사전 집필진이 엄청나게 고생을 했죠.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중추원 참의 등 일제 때 고등관직을 지낸 상당수가 빠져 있어요. 시비를 줄일 수 있도록 좀더 노력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했지요.”

그는 ‘친일’이란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일제 때 자리했다고 무조건 친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화가 나혜석의 부친 나기정은 일제 강점기 때 군수를 했지만 원래 부자여서 사재를 털어 군민 구휼을 많이 했지요.” 나기정은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일제 때도 경제 발전이 있었다’는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게(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사관이죠. 동의하지 않습니다. 후학들에게도 공부할 때 사관을 확실히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맹률이 높았고 자본도 없었던 대만과, 조선은 상황이 다릅니다. (일제 강점 때) 우리는 대만보다 훨씬 앞서 있었죠. (식민지 근대화론은) 억지입니다.”

평생 연구 경험을 토대로 바람직한 관료상을 들려달라고 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일제 때 조선인 관리들은 식민지배의 주구에 불과하죠. 이들을 통해 바람직한 관료상을 이야기 하기 힘들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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