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하지 않는 희망
테리 이글턴 지음, 김성균 옮김
우물이 있는 집·1만5000원
테리 이글턴 지음, 김성균 옮김
우물이 있는 집·1만5000원
<낙관하지 않는 희망>을 얼핏 제목만 봐서는 자기계발서처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아니다. 읽기에 수월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지은이는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인 테리 이글턴. 1970년대, 문학이론에 마르크스주의를 도입했고 그 뒤 정치학, 실존주의, 여성주의, 최근 가톨릭 신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횡단하고 소화하면서 날카롭고도 선명한 이론을 전개해온 바 있다. 이 책 또한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부터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에른스트 블로흐 같은 시인과 철학가의 저작을 넘나들며 희망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이글턴은 스스로 희망에 관한 글을 쓰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고 먼저 말한다. 자신은 심리상담용 유리잔에 담긴 맹물을 보면서 “저 유리잔은 이미 절반이나 비워졌을뿐더러 저것에 담긴 액체는 어쩌면 치명적인 독물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이런 이글턴의 ‘희망론’은 어떤 상황일지라도 무조건 삶을 긍정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낙관주의와는 당연히 다르다. 더욱이 그는 ‘전문적 낙관주의’가 단순한 기질적 버릇이라고 단언한다. “언제나 인생의 밝은 면을 봐라”는 말은 “언제나 앞가르마를 타라”거나 “아이리시 울프하운드(사냥개의 일종)를 마주치면 언제나 모자를 살짝 벗어 아첨하듯이 인사하라”는 충고와 비슷하다며 냉소적이고도 유머러스하게 비꼰다.
진정한 희망은 비극과 밀접하게 맞물린 것이라고 이글턴은 보는 듯하다. 그가 말하는 ‘희망’에는 비극적인 냄새가 난다. 죽음과 슬픔 그리고 악과 같이 상반되어 보이는 것들과 함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물이 사멸한다는 사실에는 슬픔이 내재하는 만큼이나 희망도 내재한다. 어쩌면 자비의 어떤 불가해한 원천이 심지어 소설의 악마적 주인공에게마저 은혜를 베풀 수 있으리라는 사실에도 희망이 내재할 것이다.” 현실을 바로 보게 하면서도 종교적 색채를 더한 서술이 ‘희망’이라는 쉽고도 어려운 개념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이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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