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체온
쑨거 지음, 김항 옮김/창비·1만4000원
쑨거 지음, 김항 옮김/창비·1만4000원
‘낙후된 기회의 땅’이던 중국 이미지는 어느새 ‘벼락부자’로 급변했다. 한강변에서 수천명이 삼계탕·치맥 파티를 열고 면세점을 싹쓸이하는 유커 이미지를 넘어, 진짜 중국과 중국인은 어디에 있는가?
동아시아를 사유하는 사상가로 널리 알려진 쑨거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서민들이 살아온 역사와 일상 속에서 새롭게 ‘중국’을 찾아내려 한다. 무거운 학술적 글쓰기를 내려놓고 중국인들의 삶을 세밀화로 그려내면서 깊은 질문을 던지는 25편의 에세이가 이 책에 담겼다.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문혁) 시대에 ‘국가의 주역’으로 호명되었다가 개혁개방 이후 주변으로 밀려났지만 꿋꿋하게 긍지를 지키며 살아가는 노동자들, 가난 속에서도 지혜롭고 유연하게 세상을 헤쳐나가는 농민들, 베이징 교외 마을에서 전통 농업을 일구며 ‘시장의 근대’를 넘어 새로운 미래를 만들려는 농촌운동가 등이 주인공들이다.
지은이는 ‘중국에는 민주주의, 인권, 언론자유가 없다’는 고정관념은 ‘서구식 근대’의 잣대로 중국을 재단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파업으로 ‘값싼 노동력’ 신화에 도전하는 중국 노동자들, 유독성 화학물질 공장 건설이나 부유층의 오만한 행위에 반대하며 수만명이 함께 ‘산보’에 나서는 시민들에게서 ‘민주’의 싹을 찾아낸다. “인텔리가 상상하는 ‘반체제’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민중의 생생한 민주적 실천은 날마다 사회를 개조하면서 사회체제의 탄력성도 키우고 있다.”
문혁 시기 가족이 모두 시골로 하방돼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이지만, 그 시절 새해가 되면 농촌에서 만들어 먹던 팥떡의 기억, 노동의 기억을 소중히 꺼낸다. 문혁은 무조건 비판되어야 할 고통이 아닌 추억이 공존하는 양면적 기억으로 중국인들의 삶 속에 남아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 이 책을 읽는 것은 정치체제 변화의 급류들을 이겨내고 서구식 근대와는 다른 전통과 삶의 방식을 지켜온 중국 민중의 목소리와 대안적 가능성을 만나게 되는 경험이다. 국가와 제도에 대한 질문, 중국이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비판을 애써 비켜간 듯한 지점들은 아쉽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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