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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름다움을 시장에서 구원하라

등록 2016-06-02 20:23수정 2016-06-03 19:38

제프 쿤스가 작년 6월 스페인 빌바오에서 열린 자신의 회고전에서 ‘풍선 개‘(Balloon Dog)를 바라보고 있다. 한병철은 제프 쿤스의 작품들을 “매끄러움의 성화”라고 비판한다. 빌바오/EPA 연합뉴스
제프 쿤스가 작년 6월 스페인 빌바오에서 열린 자신의 회고전에서 ‘풍선 개‘(Balloon Dog)를 바라보고 있다. 한병철은 제프 쿤스의 작품들을 “매끄러움의 성화”라고 비판한다. 빌바오/EPA 연합뉴스
재독 철학자 한병철 미학론
자본의 자유에 종속된 예술
신자유주의 비판 맥락 여전
아름다움의 구원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문학과지성사·1만2000원

“오늘날 우리는 미의 위기를 맞고 있다.” 다시, 한병철. 이번엔 ‘아름다움’이다. 지난해 독일에서 나온 <아름다움의 구원>은 변질된 미를 세속에서 구원하고, 그 속에서 다시 인류가 구원받아야 한다는 호소처럼 느껴진다.

이번 책은 베를린예술대학 교수로 일하는 지은이가 국내에 첫선을 보인 미학론, 예술론이라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그런데 시각이 아니라 ‘촉각’을 먼저 말한다는 점은 의외다. 맨 먼저 제프 쿤스의 ‘풍선 개’를 포함해 빛나고 매끈한 조형물들이 도마 위에 오른다. 2003년산 동 페리뇽 로제 빈티지 와인을 출산하는 ‘풍선 비너스’는 매끄러움과 자본주의가 결합한 절정의 작품, 또는 상품이다. 지은이는 그의 작업을 “매끄러움의 성화(聖化)”라고 표현했다.

“매끄러움”은 이제 상품과 인간이 함께 도달해야 하는 성스러운 목표가 되었다. 매끄럽고 빛나는 피부, 여성의 몸은 아름다움과 달콤함의 상징이다. 제프 쿤스의 작품을 두고 지은이는 “촉각 강제” “핥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고 했지만, 이는 몸도 마찬가지다. 물건이나 몸이나, 대상은 저항 없이 가만히 있어야 만지는 이의 쾌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 디지털 소통도 비슷해서, 걸림이나 갈등 없고 매끈할수록 ‘친구’가 많다. “매끄러운 것은 부정성이 없는, 최적화된 표면이다. 그것은 어떠한 고통도, 저항도 섞이지 않은 느낌을 낳는다.” 매끄러움은 ‘좋아요’를 부른다.

숭고한 것이 손에 닿으면 세속화한다. 한병철은 근대 미학에서 미와 숭고가 분리되었다고 설명한다. 원래 둘의 기원은 하나였으나 숭고는 부정성, 미는 긍정성에 놓여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부정성을 제거해 건강하고 매끄럽게 만든 것은 그러나 자연스럽지 않다. 삶과 삶의 쇠멸을 저지한 결과는 낯설고 기괴한 좀비. 좀비는 죽음의 부정성이 없지만, 삶의 자연미나 생동감도 없다. “우리는 오늘날 살기에는 너무 죽어 있고, 죽기에는 너무 살아 있다.”

책을 거칠게 종합하면, 자본주의와 결합한 “미의 통치”가 기존의 “미를 철폐”한 것이 오늘날 미의 특성이다. 그래서 다시, 이 책은 한병철 저작의 공통점인 신자유주의의 예속화, 통치 문제로 향한다. 제프 쿤스의 풍선 비너스가 동 페리뇽을 낳았듯, 신자유주의 미의 통치는 매끄러움과 섹시함을 낳는다. 팽팽하고 미끈한 피부와 몸을 유지하는 성형수술도 “미의 통치의 테러를 반영한다.” 그리하여, 예술의 자유는 자본의 자유에 종속되었다. 원래 예술은 소비와 투기, 자본과 화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미의 구원은 타자의 구원”이기 때문이다.

끝내 그의 예술론은 윤리학, 정치학으로 달려나간다. 주체는 타자를 만나 깨지고, 고통받고, 탈나르시시즘화한 주체는 타자를 위한 공간을 내준다. 이것이 사랑이고, 미술이고, 예술이다. 이렇게 “타자를 위해 자신을 근본적으로 철수시키는 것은 윤리적 행동”이라고 한병철은 말한다. 정말 큰 문제는, 정치적·윤리적 고찰이 뒤로 밀려나는 것이다. 미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철회하는 고양된 시간 속에 푹 잠기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 아님을 깨닫고 타자에게 자리를 내주는 미적 체험이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나르시시즘화, 소비적 경향으로 대체된 까닭이다. 미적 구원은 시장에서 거래되고, 돈으로 환원되었다.

한병철은 신자유주의 예속화와 주체 형성을 연쇄적으로 탐구해왔다. 피로 때문에 우울증 주체가 되는 <피로사회>, 디지털 파놉티콘을 분석한 <투명사회>, 착취당하는 인간의 무의식을 다룬 <심리정치>, 정치적 저항의 에너지원으로서 ‘에로스’가 사라진 시대를 설명한 <에로스의 종말>, 그리고 <아름다움의 구원>까지. 여전히 신자유주의에 대한 예리한 지적은 빛을 발하지만 이번에도 여러 물음이 든다. 예술은 예나 지금이나 시장과 가깝지 않았나? 여성과 남성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다르지 않을까? 거친 삶, 표면에서 미를 발견하려는 저항적 움직임 또한 삭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질문을 뒤로 미루며 책에 몰두하게 되는 건 거침없는 정치적, 윤리적, 철학적인 접근 덕이다. 거칠고 쭈글쭈글하게 변해가는 신체 표면과 피부를 인정하는 일, 종이라는 물성을 가진 책을 손에 쥐고 읽는 것을 그치지 않는 일, 부정성과 혼돈을 겪으며 도전하듯 글줄을 파악해나가는 일 또한 미적 경험이며 단순한 노동을 넘어선 ‘구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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