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소설집 를 낸 작가 김금희. “문단의 기대는 즐거운 일이긴 한데 그렇다고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금희 지음/문학동네·1만2000원
연애와 순정, 불안과 긴장 그려
내년에 첫 장편 연재 예정
절망한 필용이 문산의 양희 집을 찾아갔다가 상상을 뛰어넘는 가난을 목격하고 사랑을 완전히 접은 때로부터 16년 뒤, 직장에서 ‘좌천’ 인사를 당한 그는 다시 양희를 찾는다. 우연한 기회에 양희가 하는 연극을 알게 되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공연장을 찾은 것. 그러나 이 전위적 연극의 무대에 배우와 관객으로 마주 앉아서도 필용은 말문이 막히고, 돌아 나오면서 울음을 울 뿐이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깨달음만이 이 한낮의 남자에게는 남는다. ‘조중균의 세계’는 ‘무리 중’(衆)자에 ‘고를 균’(均)자를 쓰는 조중균이라는 인물의 개성에 크게 의지하는 소설이다. 식대를 아끼느라 점심을 거르며 자신이 구내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매일 수첩에 확인받고, 손아래 동료가 싸온 쉰내 나는 떡을 혼자서만 내색 않고 먹으며, 회사의 독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교정에 완벽을 기하려다 책 출간 일정에 차질을 빚어 결국 해고되는 인물. 그런 조중균이 대학 시절 이름만 쓰면 점수를 준다는 시험지에 한사코 이름이 아닌 시를 적었다가 결국 유급당했으며, 데모하다 잡혀간 경찰서에서 며칠 만에 풀려날 때 형사가 준 오천원의 ‘모욕’을 반드시 갚겠노라며 이만원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는 친구의 설명은, 고집으로 표출되며 괴팍함으로 이해되는 그의 원칙의 기원을 짐작하게 한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이름만 적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얻어지는 형태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조중균씨는 부끄러웠다. 여기에 이름을 적고 가만히 기다리라는 교수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조중균씨가 쓴 시 ‘지나간 세계’가 저작권을 고집하지 않고 누구나 집회나 엠티에서 읽을 수 있는 ‘전단시’였다는 사실, 그리고 인용문에 나오는 ‘가만히 기다리라’는 구절은 80년대적 순정과 세월호 정치학의 기묘한 결합으로 이 이야기를 읽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소설집 중간에 배치된 ‘반월’ ‘고기’ ‘개를 기다리는 일’ 등에서는 막연한 불안과 공포, 긴장과 위기감이 두드러진다. 자신 때문에 해고 위기에 놓인 마트의 정육 담당 직원을 한밤의 지하주차장에서 마주쳤을 때 그가 “수상쩍게 한쪽 손을 점퍼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는 ‘고기’의 결말, 그리고 “어쨌든 우리는 떠 있었다. 견디고 있었다”는 ‘반월’의 마지막 장면은 “균열과 전망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들”(‘개를 기다리는 일’)이라는 작가의 신념을 보여주는 것 같다. 김금희는 인하대 국문과 출신으로, 지난해 제2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자인 한은형과는 과 동기동창이다. 소설집 두권으로 일약 한국 문단의 중심에 진입한 그는 내년에 “필용 비슷한 인물의 직장 생활과 사랑의 좌절을 그린” 첫 장편을 잡지에 연재할 예정이라고 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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