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음양오행과 사주명리도 학문일까

등록 2016-06-09 20:03수정 2016-06-10 11:31

단순 이분법·자의적 텍스트에 불과
“인문학 새 지식”은 비과학적 주장
‘한국 스켑틱’ 특집에서 문제제기
<주역>에 따른 인생의 주기.
한국스켑틱 제공
<주역>에 따른 인생의 주기. 한국스켑틱 제공

‘사주, 궁합도 학문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면 열에 일고여덟은 웃어넘길 것이다. 그런데 ‘음양오행(陰陽五行)도 학문이다’로 말이 바뀌면 그저 웃어넘기기는 쉽지 않다. 최근 들어 몇몇 진보적 지식인들이 음양오행을 학문 세계에 ‘입적’시키려 시도하고 있고, 그 반대 논의 또한 만만찮은 형국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회의주의’를 표방한 계간지 <한국 스켑틱>은 최근호(제6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음양오행과 사주’ 특집에 실린 두 편의 기고는 이 오래된 동아시아의 습속에 학문 세계의 시민권을 부여해도 좋은지를 꼼꼼히 따져 묻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 <주역>과 사주·명리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인 황태연, 강헌, 고미숙 등 일군의 진보적 지식인들에 대한 유쾌하고 발랄한 ‘지적 태클’이기도 하다.

‘음양오행이라는 거대한 농담, 위험한 농담’을 쓴 이지형은 음양설이 요즘 세상에선 통용되기 어려운, 몹시 단순한 이분법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음양설에 따르면, 우주와 삼라만상은 음과 양으로 구성돼 있고, 만물은 이 둘의 변이 속에 생성하고 발전하고 소멸한다. 세상은 어둠과 밝음, 밤과 낮, 고요함과 움직임,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 수동과 능동, 추위와 더위의 교대로 설명 가능한데, 이를테면 지진은 음기에 짓눌린 양기의 폭발적 발산으로 해석된다.

음양의 기원은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면 “태양과 달로 최종 수렴한다.” 태양과 달, 거기서 비롯되는 낮과 밤을 겪으며 고대 중국인들은 음양의 프레임을 떠올렸다. 45억년 전에 만들어진 ‘태양-지구-달 시스템’이 음양설의 바탕이니, 138억년 전 빅뱅으로 생성된 우주의 원리는 이 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니 음양은 “아무리 그 의의를 인정해준다 해도 ‘지구적 차원의 쇼’를 넘어서지 못한다.”

이 음양의 관념을 지구와 사람에 적용한 <주역>은 또 어떤가. <주역>은 “추상적 특성의 음양을 거꾸로 세워, 현실로 진입시킨 것”이라고 이지형은 규정한다. <주역>은 64괘(卦·기호)로 이뤄져 있는데, 하나의 괘는 6개의 음 또는 양의 효(爻·가로 막대기)로 이뤄진다. 아래서 위로 “음이나 양을 6층으로 쌓는다. (…) 2×2×2×2×2×264, 64개 기호가 만들어진다. 이 64개 기호와 64개를 이루는 384(64×6)개 막대에 우주 삼라만상이 들어 있”어 그중 어떤 괘나 효를 골라내면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다고 사람들을 설득해왔다.

추상적인 64개 기호(괘)들에 초창기 <주역>의 주역들이 옛날 원시적인 점괘의 기록을 참조해 개별 이름과 짧은 해설을 달고, 다시 공자를 위시한 유학자들이 ‘십익’(十翼)이라는 이름의 해설 텍스트를 붙이면서 <주역>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체계를 갖추게 됐다. 그러나 “괘 또는 효와 그에 대한 유학적 언급들의 관계는 자의적”이다. 가령 “왜 <주역>의 15번째 지산겸(地山謙) 괘가 겸손을 뜻하는 겸(謙)의 괘여야 하며, 이 괘의 다섯 번째 효에 관한 해설이 ‘침범하는 게 이롭다는 것은 복종하지 않는 지역을 정벌한다’라는 뜻이 돼야 하는지 음양적 근거 따위는 없다”. <주역>을 두고 이지형은 “무의미한 음양 막대기 6개씩의 조합과 유학자들의 사유가 자의적으로 결합된 무질서한 텍스트”라고 단언한다.

그는 사주의 근간이 되는 오행 역시도 낭설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세상 모든 물질이 물(水)·불(火)·나무(木)·쇠(金)·흙(土) 다섯 가지 요소로 이뤄져 있다는 이 오래된 생각은 118개 원소 주기율표 앞에서 이미 설 자리를 잃었음에도 사주에서는 상생·상극 개념을 빌려 수명을 연장했다. ‘목인내, 화다혈질, 토포용, 금냉정, 수유연’이라는 애초 도식을 독립심(정치인), 표현력(작가·연예인), 돈(사업가), 통제력(관료), 지식(학자) 등 새로운 풀이 기준과 연결시켜 사람의 생몰 시기, 가족관계, 인생의 시기별 형국까지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전지적 시점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행이 허구인 만큼 사주 또한 같은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름깨나 알려진 지식인들이 이 비주류 문화 콘텐츠를 쉽게 해설하는 데서 멈춘다면 긍정적일 수 있지만, 인문학에 필요한 새로운 지식이라고 정색하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그냥 넘어가줄 수 없는 일”이라고 이지형은 말한다.

같은 특집에 ‘역법이 달라지면 운명도 달라지나’를 기고한 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사주·명리의 기본 자료이자 근거인 책력의 허술함을 파고들어 결국 사주는 심심풀이 이상이 될 수 없음을 입증하려 든다.

일년 동안의 월일, 해와 달의 운행, 절기 등을 날의 순서대로 적은 책력은 기실 “미신과 점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날그날의 점괘에 해당하는 역주(歷注)는 “자의적이고 비과학적이며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예컨대 조선시대 책력 작성의 매뉴얼 격인 <작력식>만 봐도 약 29.5일인 삭망월 주기에다 일진, 육십화갑자, 이십팔수, 십이직을 조합해 점술적인 역주를 달았다. 그중 하나인 복단일(伏斷日)의 경우 화장실(측간)이나 제방을 만들기엔 길한 날이지만, 장례나 혼사를 치르기는 흉한 날이라고 돼 있다. 그런데 왜 그런지는 설명이 없다. 그저 책력에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에 따라야 한다는 식이다.

게다가 역법은 천체에서 가장 큰 오차를 일으키는 달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시로 고쳐야 했고, 아예 새로 만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새 책력에 옛 역주를 달아 혼란이 가중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안 연구원이 책력과 역주를 집중 겨냥한 이유는 이른바 “명리학의 운용 방식과 동일”해서다. 참과 거짓을 가릴 수도, 검증을 할 수도 없으니 명리학은 학문이 될 수 없는 “유사과학”의 일종일 뿐이다.

음양오행과 사주의 논리구조가 단순해서인지 두 글은 비교적 간결하다. 2천여년 장구한 세월을 견뎌낸 끈질긴 ‘생명력’을 반박하기엔 너무 짧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긴 해도 두 글은 풍부한 논점과 과학적 근거를 담아 ‘논쟁 유발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