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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운동권 소설이 낡았다고?

등록 2016-06-09 20:04수정 2016-08-09 14:51

주원규의 다독시대
최근 제1야당의 원내대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을 놓고 언론의 관심이 뜨겁다. 그가 한국의 ‘86세대’를 대표하는 운동권 출신 의원이란 점에서 보이는 관심인데, 그 관심의 방향이 기대보다는 우려, 지지보다는 비판에 가깝다. 다수의 언론이 그의 행보와 말에 우려의 시선으로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가 운동권이란 이유 때문이다. 그들은 운동권이란 익숙해진 용어에 친노 프레임, 패권, 배타주의, 시대 역행, 이념 우선이란 부정적 키워드를 별생각 없이 갖다 붙인다. 그래서일까. 운동권 당사자들조차 국회나 단체 등 이른바 유명의 장 안에 들어서면 슬그머니 운동권의 정체성을 감추기도 한다.

그런데 묻고 싶다. 운동권이란 개념이 과연 그런 것인가. 몇몇 폐단만 놓고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싶다. 하지만 운동권 정신의 바탕을 구성하는 보편적 흐름은 독재에 대한 저항과 자유를 향한 외침 아니던가. 독재에의 저항은 이념적 수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저항은 사회 구성원이 당연히 호소해야 할 인간다운 삶의 항구적 표지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이는 생존권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에서 운동권은 눈에 보이는 독재가 사라졌다 해서 낡은 프레임 취급 당할 수 없다. 오히려 더 첨예하고 교묘하게 시대를 파고든 보이지 않는 독재에 대한 성찰과 저항의 보루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비슷한 오해가 운동권 소설이란 범주를 시대에 역행하는 낡은 것, 진부한 부류로 취급하는 경향에서도 나타난다. 운동권 소설을 주로 후일담을 다루는 ‘소녀 취향’의 감성팔이로 규정하고 이보다는 좀 더 전위적인 소재와 스타일을 선호해야 한다는 강박이 한국 소설을 지배해온 것이다. 이러한 지배 정서에 역행하는 두 편의 운동권 소설이 있다. 김선우의 <캔들 플라워>(예담·2010)와 손아람의 <디 마이너스>(자음과 모음·2014)가 그렇다.

<캔들 플라워>의 표면적 소재는 촛불집회다. 소설은 캐나다 오지 마을에서 온 한 소녀가 한국 사회에 일어난 대표적 망국 현상에 대한 대대적인 저항 사건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그려낸다. 이를 통해 촛불집회가 단순한 대증적 소란이 아니라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이해 부족의 현실이 사회를 어떤 형태의 비극으로 몰고 가는지 추적한다.

<캔들 플라워>가 촛불집회란 한 현상을 바탕으로 본질을 추적해 들어갔다면 손아람의 <디 마이너스>는 바탕의 정서를 해부하듯 파고드는 저돌성을 보여준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한국 사회를 뚫고 들어온 신자유주의 폭거에 대한 그 나름의 저항과 성찰을 다룬 <디 마이너스>는 아직 아무것도 청산되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의 부조리, 독재의 잉여를 근본적으로 다루고 있다.

주원규 소설가
주원규 소설가
두 소설의 지은이 모두 ‘운동권’이란 키워드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독재적 사고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을 담은 기록이란 점에서 운동권 소설이라 명명하기에 부족함 없어 보인다. 그리고 질문해 본다. 운동권 소설은 정말 낡았는가? 진부하고 갱신해야만 하는 과거의 훈장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생생히 깨우치고 있다. 오늘 우리 사회를 감싸안은 독재의 망령, 그 참혹한 징후를 조금만 살펴봐도 답은 분명해진다. 운동권 소설은 낡지 않았다. 다만 진화할 뿐이다.

주원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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