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로이스 W. 배너 지음, 정병선 옮김/현암사·3만2000원
거대한 광경이 펼쳐지는 장편 극영화를 보는 듯 광범하고 드라마틱하다. <국화와 칼>로 유명한 ‘인류학의 선구자’ 루스 베네딕트(1887~1948)와 인류학 고전 <사모아의 청소년>으로 ‘본성 대 양육’ 논쟁을 낳은 ‘인류학의 대모’ 마거릿 미드(1901~1978). 두 사람은 사제이자 학문적 동지였고, 영혼의 동반자였고, 연인이었다.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는 2000년대 초까지 대외비로 묶여 있던 수백통의 편지, 서류 등 문서 컬렉션을 총망라한 최초의 평전이다. 지은이 로이스 배너 교수(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역사 및 젠더학)는 정교한 탐사활동으로 두 사람이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인생의 과정에서 겪은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복잡한 지형을 밝혀낸다. 두 사람의 심리적 행로, 성정체성까지 두루 검토했다.
1922년 가을 뉴욕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2년 뒤 연인관계가 되었다. 내성적이고 불안하며 아름다운 이목구비에 큰 체구를 지닌 베네딕트에 견줘, 활발한 성격에 화려한 언변을 지닌 미드는 아담하고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여성 교수가 교수식당에 들어갈 수조차 없던 시대, 학계의 터부와 기대감 속에서 두 사람은 사랑하고 연구했다. 뒤에는 ‘인류학의 거장’인 스승 프랜츠 보애스가 있었다.
둘 사이 오간 편지 속 낭만적 메시지와 고백은 읽으면 몸이 오그라들 정도로 애정이 뚝뚝 묻어나지만, 두 사람은 공개적인 ‘커플’일 수 없었다. 미드는 양성애를 실천했고 자유연애를 거의 종교처럼 생각했지만 동성애 성향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인종주의, 동성애 혐오, 여성 혐오가 만연하던 시대상을 고려하면 그 속에서 때론 모순적이고 복잡미묘할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학문적 견해와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베네딕트가 죽은 뒤, 미드는 말했다. “그녀와 같은 사람을 보게 되는 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 후세는 이들처럼 사적인 삶과 연구를 통틀어 완전하게 융합을 이룬 인류학자들을 다시는 만나볼 수 없게 되었다. ‘인류학의 시조새’였던 두 여성학자들의 생애와 학문을 800여쪽에 담은 결정판 전기이자 중요한 문화연구서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로이스 W. 배너 지음, 정병선 옮김/현암사·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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