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춘천에서 9살 난 파출소장의 딸이 성폭행당하고 죽은 채로 논둑에서 발견됐다. 이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전국을 들썩이자 당시 내무부 장관 김현옥은 10일 안에 범인을 잡지 못하면 수사 관계자들을 엄히 문책하겠다는 시한부 검거령을 내렸다.
피해자가 자주 다녔던 만홧가게 주인이 범인으로 지목됐다. 수사관들은 용의자를 불러 때리고 물고문하는 한편으로 친척과 친구들을 불러 증언을 맞췄다. 피의자의 9살 아들의 필통에서 연필을 빼내 현장 증거로 만들고선 10일째 되던 날 범인을 잡았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사건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마감일을 지킨 것이었다.
폐에 물이 차고 뼈가 으스러지는 고문을 못 이겨 모든 혐의를 인정했던 용의자는 그 뒤 대법원까지 항소했지만 한 번 내려진 판결은 바뀌지 않았다. 자살을 시도하는 것을 감옥에선 ‘넥타이를 맸다’고 한다. 3번 넥타이를 맸던 소설의 주인공, 만홧가게 주인 ‘정원탁’씨의 이야기는 실화다. 강간살인범으로 몰려 15년 동안 복역한 그의 실제 이름은 정원섭이다.
<넥타이를 세 번 맨 오쿠바>는 억울한 피의자와 그를 돕던 변호사의 이야기를 통해 유신 한복판 사법 암흑의 시대를 말한다. 피해자 성기에서 나온 음모는 범인 혈액형이 A형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피의자 혈액형은 B형이었다. 심지어 현장 증거까지 정원탁(정원섭)은 무죄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재판부는 그가 이미 자백했다는 사실만을 중시했다.
39년 동안 살인누명을 쓴 사람에 대한 이야기지만 묘사하는 방식은 거침없고 경쾌하다. 수사관들이 정씨를 “범죄성향이 다분한 이”라고 지목하기 전에 그는 치과병원 막내아들이라고 해서 별명이 오쿠바(어금니라는 뜻의 일본말)였고, 목사가 되려고 했던 청년이었으며, 아들이 죽고 교회를 멀리하게 된 평범한 아버지였다. 소설 형식을 빌려 피의자가 아닌 한 인간을 그려낸 사람은 서울 홍익대 앞 식당 두리반 주인 유채림씨다. 재개발 반대 싸움을 하는 틈틈이 쓴 책이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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