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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서울 건물들 보기만 해도 쓴웃음”

등록 2005-10-27 18:04수정 2005-10-28 14:28

임석재 교수의 ‘건축, 우리의 자화상’
임석재 교수의 ‘건축, 우리의 자화상’
인터뷰/<건축, 우리의 자화상> 쓴 임석재 교수

“말로는 한국성, 작품성 운운하는데 건축가들의 관심사는 박물관, 미술관 등 폼나는 것들입니다. 패스트푸드점 같은 대중문화를 담는 건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당장은 아니라도 계획안을 발표해서 공론화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건축, 우리의 자화상>(인물과 사상펴냄)을 쓴 임석재 교수(이화여대 건축과)는 우리의 건축 실태를 생각하면 우울하고 갑갑하다. 그의 책은 그런 내용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그만큼 직설적이고 때로는 거칠다.

고속철 역사, 영화관, 교회, 대학건물, 모텔 등은 멋도 모른 채 외국 것을 이식한 건축물이다. 그 가운데 모텔은 ‘그리스신전을 모방한 디즈니랜드를 모방한 에버랜드를 모방’했다. 음악이나 미술에서는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고 나름대로 성공하고 있는데 유독 건축만은 99%가 서양 추수적이라는 평가다.

그의 눈에 비친 서울은 쓴 웃음이 나오는 데가 한둘이 아니다.

의류매장 건물은 옷만 몹시 빼곡하다. 미세먼지와 인공조명으로 채워져 손님과 점원들의 건강은 안중에 없다. 강남의 초고층 아파트는 괴기스럽게도 창이 열리지 않는다. 환기가 안돼 입주자들은 호흡기병을 달고 살아야 한다. 대치동 학원건물은 잘게 쪼개진 모양새로 신림동 고시촌으로 옮겨와 있다. 천박한 출세주의를 날것으로 드러낸다. 우리땅 테헤란로는 외국 건축자본이 제멋대로 노는 멍석이다. 독립선언서가 울려퍼졌던 파고다공원은 섬처럼 갇혀 있고 큰길 맞은 편에서 같은 이름의 외국어학원 건물이 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방치된 노인문제와 외세의존적인 젊은이들의 기이한 대비. 도심을 꿰차고 앉아 체증을 일으키며 소비를 부추기는 백화점들은 어떤가.

“서울 건물들 보기만 해도 쓴웃음”  임석재 교수의 ‘건축, 우리의 자화상’
“서울 건물들 보기만 해도 쓴웃음” 임석재 교수의 ‘건축, 우리의 자화상’
속 터지는 것도 많다. 정치적인 시청앞 광장은 잔디를 걷어내고 싶고, 일제가 종묘와 창경궁을 가르고 낸 율곡로는 없애고 싶다. 능선을 에워싸거나 파고앉은 아파트 역시 그렇다. 관공서 건물은 왜들 다 권위적인 공무원 모습을 빼닮았는지….


더 속 터지기는 이런 괴기스런 건축행태를 바로잡기 어렵다는 것. “예전에는 건축가들이 정치권력에 종속되었다면 요즘은 자본에 종속되어 있어요.” 그들이 요구하는 틀에 맞춰 뽑아내는 기능인 역할에 멈추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강단에 선 그조차 일자리를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넘겨줄 여지가 없다. ‘기록하고 비판하는 일만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책을 썼고 기왕에 당연한 것으로 여긴 것들에 딴지를 걸었다고 말했다.

“30~40층 아파트가 마구 솟고 있는데 수명이 다하는 30년 뒤에는 어떻게 될지 끔찍합니다.” 서울은 슬럼화하고 도시탈출 현상이 빚어질 것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아파트가 인간이 사는 건축물이 아니라 재테크 수단인 부동산으로 취급되면서 벌어지는 기이한 행태의 끝은 암울하다.

최근 강북 아파트의 용적률을 푼 것을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강북은 자연스런 능선들과 저층에서의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공간으로 강남의 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산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분개하지만 현실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게 아이러니다. 고층화의 70~80%만 나와도 시도해 볼 만하지 않겠는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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