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
압도적인 죽음과 소멸 예감 속
삶과 시를 향한 안간힘 보여
압도적인 죽음과 소멸 예감 속
삶과 시를 향한 안간힘 보여
최승자 지음/문학과지성사·8000원 최승자(64)의 여덟 번째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는 죽음과 소멸의 예감으로 가득하다. “내 손가락들 사이로/ 내 의식의 층층들 사이로/ 세계는 빠져나갔다/ 그러고도 어언 수천 년// 빈 배처럼 텅 비어/ 나 돌아갑니다”(‘빈 배처럼 텅 비어’ 전문) “그리하여 문득 시간이 끝난 뒤/ 허공을 불어가는 고요한 바람 소리/ 붙박이 별도 떠돌이 별도 사라진 뒤// 그리하여 모든 시간이 끝난 뒤에”(‘그리하여 문득’ 전문) 시집 어느 페이지를 펼쳐 봐도 죽음과 소멸 또는 종말의 이미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 자신에게 가장 친숙한 것이 죽음이라는 듯, 시인은 지치지도 않고 죽음을 노래한다. 시집 맨 앞에 실린 표제시는 “하루나 이틀 뒤에 죽음이 오리니/ 지금 피어나는 꽃 피면서 지고”(‘하루나 이틀 뒤에 죽음이 오리니’)나 “살았능가 죽었능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 대답하라는 소리”(‘살았능가 살았능가’) 같은 죽음의 예감 또는 부름의 시편들로 이어진다. 물론 최승자는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1981)에서부터 <내 무덤, 푸르고>(1993)에 이르는 초기 시들에서도 유난하리만치 죽음에 친연성을 보였다. 그러나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일찍이 나는’) 또는 “그게 우리의 삶이라는 거지. 죽음은 시시한 것이야./ 왜냐하면 우린 이미 죽어 있으니까.”(‘서역 만리’) 같은 초기 시들에서 죽음이 위악적이며 반어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달관까지는 아니더라도 모종의 체념적 태도가 짚인다. 이런 시들을 보라. “하늘의 바람을 불게 하는 자는 누구인가/ 누군가 운명을 쥐고 누군가 운명을 건네받는다”(‘따듯한 풀빵 같은’ 부분) “하늘이 운다/ 구름이 운다/ 일생이 불려가고 있다// 어느 날 나는/ 마지막 저녁을 먹고 있을 것이다”(‘어느 날 나는’ 전문)
<물 위에 씌어진> 이후 5년 만에 여덟 번째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를 낸 최승자 시인. “한판 넋두리를 쏟아놓은 기분”(‘시인의 말’)이라고 썼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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