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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천의 얼굴’ 단테를 벗겨보라

등록 2005-10-27 19:02수정 2005-10-28 14:26

단테 〈신곡〉의 지옥도. 자료 서해문집 〈신곡〉(박상진 옮김)에서.
단테 〈신곡〉의 지옥도. 자료 서해문집 〈신곡〉(박상진 옮김)에서.
‘하느님의 세계’ 7일간의 순례 기록 불완전한 재현 무수한 겹에 싸인 신비로운 책 독자들도 하여금 ‘기억’을 확장토록 한다 단테는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만 “네 앞에도 너의 길이 있다” 또 다른 진리를 찾아나서라 한다
고전 다시읽기/단테 ‘신곡’

단테의 <신곡>은 하느님의 섭리와 구원, 그리고 그를 대하는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를 중심으로 서구의 기독교 문명을 집대성한 최고의 문학작품이다. 다루는 범위는 예술과 문학, 역사, 전설, 종교, 철학, 정치학, 천문학, 자연 과학 등 인간의 삶과 지식에 관계되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신곡>은 균형과 절제를 통하여 문학작품이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업적을 이루어냈다. 수많은 비평가들은 단테를 우주의 보편성을 지닌 시인으로 평가했고, 뛰어난 문학적 장치의 설계자로 인정했다. <신곡>과 함께 단테는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서양 문학의 전범으로 꼽힌다.

<신곡>은 분명 동서를 뛰어넘어 보편의 문학 가치를 지닌 고전이다. 그러나 그 말에 선뜻 동의하기에는 <신곡>을 제대로 읽었는지, 혹시 그냥 고전이라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게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사실 의구심이 든다는 것은 좋은 신호다. <신곡>을 나름대로 소화하고 싶다는 욕망의 반증이니까.

진정한 고전에는 문명과 시대의 경계를 넘어서는 힘이 있다. 나는 <신곡>의 그런 힘을 염두에 두고서 <신곡>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자 <신곡>은 무수한 겹과 결을 지닌, 신비롭기까지 한 책으로 다가왔다. 그 수많은 겹과 결들 중 나의 눈이 머문 곳은 제한된 부분이겠지만, 나는 그런 특수한 경험을 통해 <신곡>이 진정한 고전임을 알게 되었다.

<신곡>은 단테가 7일 동안 하느님의 세계를 여행한 문학적 상상의 기록이다. 단테는 여행을 마치고 기억을 통해 지난 일을 회상하며 <신곡>을 집필한다. 말하자면 <신곡>에 담긴 거대한 초월의 세계는 비초월자인 단테의 내부에서 형성되어 나온다. 그 과정에서 단테가 의존한 것은 기억이었다. 기억은 개인적인 사고와 정념으로 이루어지며, 불완전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작가 단테는 문학의 미적 형식을 빌려 독자들의 다양한 해석을 통해 자신의 기억이 확장되기를 기다린다. 단테는 인간의 기억으로 불완전하게 재현된 초월의 세계를 독자와 더불어 계속 보완해나가고자 하는 문학적 기획의 입안자였다.

기독교 문명 집대성한 걸작


내 눈에 비친 단테의 순례의 목적은 구원이다. 단테는 기억을 통해 그 구원을 이루어내고자 한다. 기억은 하느님의 불멸의 빛에 이르려는 단테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단테는 순례의 경험을 기억을 통해서만 자신과 우리에게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테는 순례의 끝에서 하느님과 만나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나의 눈은 더 맑아져갔고 스스로 진실한 저 드높은 빛줄기로 점점 더 파고들었다.…기억은 그런 궁극 앞에서 사라진다.”(천국, 33곡)

하느님의 존재는 그 자체로 진리의 궁극이다. 단테는 궁극의 진리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빛으로 해체된다. 그와 함께 그의 기억은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나는 <신곡>에서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단테를 발견한다. 단테는 하느님의 품에서 이 세상으로 돌아와 우리에게 얘기를 들려준다. 천국의 천사들은 기억이란 걸 모르지만(베아트리체는 이렇게 말한다. “천사들은 기억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여러 갈래의 사고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천국, 29곡)), 단테는 기억하려 애쓴다. 그런 그는 기억을 무화시키는 초월과 기억을 작동시키려는 현실의 중간에 서 있다.

초월의 세계에서 단테를 이끄는 길잡이는 베아트리체와 베르길리우스다. 이들은 필멸의 존재 단테를 영원한 구원으로 이끄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들을 <신곡> 속에서 창조하고 이들을 행동하고 말하게 한 것은 작가 단테 자신이었다. 즉, 이들은 단테의 내부에서 나온, 단테 자신의 다른 모습들이다. 단테는 길잡이를 내세워 자신을 구원으로 인도하게 하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궁극의 길잡이로 내세워 구원의 길을 자문하고 대답하는 성찰적 지식인이었다. 과연 단테는 당시 분열된 이탈리아의 지식인으로서 <신곡>을 통하여 정치적, 사회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공식어였던 라틴어 대신에 속어(이탈리아어)로 <신곡>을 쓴 것도 당대를 치열하게 고민한 증표다. 단테는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 대화함으로써 구원의 이상을 현실에서 추구하고자 했다. 단테의 <신곡>이 완결성을 얻는 것은 하느님의 보편과 불멸에 몸을 실어서가 아니라 그들을 인간의 언어로 재현하려는 근대적 작가 의식에 의해서였다.

진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

스스로를 문제적 인간으로 놓고 끝없는 구도의 길을 걷는 작가 단테. <신곡>에서 인간의 구원은 하느님의 섭리에 따른다기보다 인간의 치열한 고뇌의 길에서 얻어진다. 나는 <신곡>에서 단테가 남긴 수많은 고뇌의 흔적을 외면할 수가 없다. 단테의 여행이 지옥에서 연옥을 거쳐 천국으로 상승하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흐름에 따르며, 하느님의 빛으로 나아가는 목표를 세우는 한, 그의 길은 오직 한 곳으로 뻗어있다. 단테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우리를 그 길로 유인한다. “내게 빛과 희망을 주었던 길잡이를 따라서 강한 욕망의 깃털로 날아가자고” (연옥, 4곡).

그러나 <신곡>을 읽는 동안 단테는 또한 끊임없이 또 다른 얼굴로 나타나면서 내게 나직이 말한다. 네 앞에도 너의 길이 놓여있다고. 너도 나처럼 너의 진리를 찾아 나서지 않겠냐고. 그래서 나는 생각하게 된다. <신곡>에 길잡이가 있다면, 그것은 구원의 길을, 확정된 진리로 제시하기보다는, 찾아 나서야 할 것으로 만드는 과정 자체일 것이라고.

내가 볼 때 단테에게 문학은 그런 것이었다. 단테가 어떤 진리를 추구했다면 문학 작가로서 그렇게 했다. 진리는 문학적 생산물로 번역되면서 우리 앞에서 깜박거린다. 단테가 <신곡>에 장착한 교묘하고 치밀한 미적 형식은 진리를 환하게 비추기보다는 깜박거리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그것은 작가로서 단테가 의도했을 법한 이른바 ‘문학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 ‘문학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신곡>을 읽는 독자의 역할이다. 나는 <신곡>에 대한 열린 읽기가 바로 작가 단테의 문학 기획에 참여하는 독자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신곡>이 품고 있는 진리는 무엇인가?

<신곡>의 진리는 스스로 차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하나의 계기로 존재하고 작동한다. <신곡>을 읽으며 나는 비어있는 진리를 상상하고 진리를 문제로 떠올리고, 동시에 진리의 내용을 보완하고 바꾸며 채운다. 진리는 존재하기보다는 계속 생성되는 무엇이며, <신곡>이라는 텍스트는 그를 위한 장이 된다. 텍스트 <신곡>은 진리를 생성함으로써 진리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수 있는 가능성을 펼쳐 낸다. 나는 <신곡>의 독자로서 이렇게 겨루어진 진리들을 상상하고자 한다. 이런 상상의 과정은 <신곡>의 진리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를 문제적으로 만들면서 다양한 의미 층을 생산하게 한다.

박상진/부산외국어대 교수
박상진/부산외국어대 교수
내가 <신곡>에서 찾아낸 구원의 길이 단테의 의도와 맞는지를 묻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맞고 틀림을 가르고 판단하기보다는 다른 가능성을 중첩시키고 보충하고, 진리의 여러 내용을 상상하고 겨루게 만들면서, 나의 맥락에서 <신곡>이 지닐 수 있는 진리의 입안자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신곡>의 진리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디에 있고 어떻게 내 앞에 나타나는지를 묻고자 한다. 이는 무수한 겹의 단테의 얼굴들을 한 겹씩 벗겨보는 일이다. 나는 거의 무한할 그 일에서 재미를 느낀다.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신곡>에 거듭 경탄하면서.

서평자 추천 도서

신곡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한형곤 옮김

서해문집 펴냄(2005)

(해설과 역주가 달린 원전 완역본)

신곡 읽기의 즐거움

김운찬 지음

살림 펴냄(2005)

(국내 최초의 <신곡> 해설서. 쉽게 안내한다)

중세 천년의 침묵을 깨는 소리 단테

R.W.B 루이스 지음, 윤희기 옮김

푸른숲 펴냄(2005)

(작품을 통해 구성한 단테 전기. 재미있다)

50자 서평

◇ 박찬미(38·수필가) “지옥과 연옥, 천국의 여행길을 통해 단테가 책을 지었던 14세기로부터 현재까지 변함없는 선악간의 인간 내부 갈등을 숙고하게 하는 책”

◇ 페르(알라딘 마이리뷰에서) “두번 째 읽는 느낌은 아주 색다르다. 첫번 째엔 너무 지루한 나머지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단테의 상상력은 경이롭고 감탄을 자아나게한다. 인간의 상상력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한계가 있을까?”

◇ hamiru0314(〃) “솔직히 이 책을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철저한 기독교식 세상관, 듣도 보도 못한 고대 전설적 인물들의 이야기 등등. 하지만 고진감래라 했던가. 어렵게 읽은 책이어서인지 더 애정이 간다.”

▽ 다음주 이후 고전 <자유론>, <소학>·<대학>, <걸리버 여행기>의 50자 서평에 참여해주세요. 전자우편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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