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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우주는 스토리로 이루어졌고, ‘나’는 다차원적으로 존재한다

등록 2016-07-01 08:52수정 2016-07-01 09:02

비밀 문장
박상우 지음/문학과지성사·1만3000원

박상우가 돌아왔다. 아주 낯선 소설을 들고. 장편으로는 무려 13년 만인 신작 <비밀 문장>은 그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양자역학, 평행우주, 자각몽 세 이론틀 위에 세운 구조물이다. 첨단 이론물리학과 심리학 분야의 가설에 해당하는 이 개념들을 소설에 끌어들인다는 발상부터가 파격적이다.

“1988년 등단하고 곧바로 주목을 받는 바람에 1999년 이상문학상을 받기까지 무지막지하게 썼어요. 쓰다 보니 동어반복이 거듭되었고, 이런 식으로 계속 쓸 수 있을까 하는 부대낌이 있었지요. 이상문학상 수상 뒤에는 한 10년 정도 공부만 해야겠다 생각하고 사실상 절필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때 <홀로그램 우주>라는 책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21세기는 이미 과학의 시대가 되었는데 내가 너무 문학판이라는 좁은 영역에만 갇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뒤 더 많은 과학 책을 찾아 읽게 되었고, 과학과 융합하면 문학의 새로운 영토를 열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책 뒤에는 <홀로그램 우주>를 비롯해 <평행우주> <양자론> <프랙탈과 카오스의 세계> 같은 과학 및 동양사상, 초심리학 분야 책들이 망라된 수십권의 참고문헌 목록이 실렸는데, 이 소설은 그처럼 확장된 과학적 인식을 소설에 적용한 작업이다. 주인공 문필우는 서른살 생일을 앞두고 자살을 결심한다. 어려서부터 소설가를 꿈꾸며 살아온 그는 서른이 되기 전에 등단하지 못하면 삶을 스스로 마감하겠다고 마음을 굳혀온 터였다. 출판사의 문학 편집자이기도 한 그는 같은 출판사의 과학 담당 팀장인 ‘써니’(양선이)와 연인관계이기도 한데, 써니는 어느 날 자신의 개인사를 다룬 소설 <제로>를 남긴 채 종적을 감춘다.

박상우 신작소설 ‘비밀 문장’
양자역학, 평행우주, 자각몽 등
첨단물리학과 심리학 이론 담아

한편 문필우는 등단을 했으면서도 한사코 책을 내지 않으려는 괴짜 소설가 문필수를 만나고, 산악인이기도 한 그가 네팔로 떠나게 되면서 그가 살던 달동네 꼭대기 ‘초인의 집’을 물려받는다. 그곳에서 그는 ‘쿄쿄’라는 영체(靈體)를 만나며 그로부터 삶과 죽음, 인간과 우주의 진실에 눈을 떠가게 된다. 쿄쿄를 통해 문필우가 배우게 되는 ‘비밀 문장’은 이 소설의 주제이자 작가 박상우가 10여년 독학으로 깨친 인간과 우주의 비밀을 담았다. 이런 식이다.

“3차원 우주의 모든 것은 다른 차원에 있는 영체의 의식이 만들어내는 꿈이에요.”

“지구인들이 말하는 ‘나’는 전체로서의 실재가 아니라 전체 중의 지극히 일부가 반영된 환영이에요.”

“당신은 당신과 동일한 퍼스낼리티가 다차원적으로 존재한다는 걸 알지 못한다.”

장자의 호접몽이나 보르헤스의 소설, 불교에서 말하는 인타라망 그물과 가이아 이론, 평행우주론 등이 결합된 이런 가르침을 접하고서 문필우는 자살 대신 새로운 모험과 인식을 향해 나아간다. 할리우드 영화를 떠오르게도 하는 모험의 세목에 대해서는 책을 읽을 독자를 위해 말을 아끼기로 하자. 작가 지망생인 문필우가 ‘이야기 우주’를 발견하고 그로부터 출구를 찾는다는 발상은 과학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쿄쿄는 말한다. “당신은 스토리 속에서 태어나고 스토리 속에서 성장했어요. (…) 우주의 모든 것이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깨치고 나면 당신은 세상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요. (…) 모든 것은 프로그램이고, 그것은 스토리로 구성되죠.”

쿄쿄의 가르침과 부추김에 따라 문필우는 스토리코스모스닷컴(storycosmos.com)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한다. “지구인이 자기 존재를 스토리로 자각하고, 자기 인생을 스토리로 자각하고, 우주의 모든 운행을 스토리로 자각하는” 것이 이 사이트의 목표이자 취지다. 그렇게 스토리로서 존재와 인생,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보기-바로 쓰기’와 ‘다시 쓰기-다시 보기’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존 세계관의 맹점을 바로잡고 새로운 세계관으로 무장하는 의식 개조 작업이다. 새로운 인식과 모험을 거치면서 문필우는 <비밀 문장>이라는 소설로 문학상을 받고 헤어졌던 ‘써니’와도 재회하지만, 작가는 문필우 버전과 박상우 버전 그리고 독자 버전이라는 세 가지 (이상) 버전으로 소설의 결말을 열어놓는다. 무한한 이야기가 가능한, ‘양자소설’의 시범을 보인 것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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