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동양고전 저술가 기세춘 선생
동양고전 저술가이자 재야 운동가인 기세춘(81) 선생은 5년 전 전립선암 판정을 받았다. 그 뒤 출판사들과 맺었던 출간 계약을 해지하고 의사 권고에 따라 술, 담배도 줄였다. 다행히 암세포는 번지지 않았다. 지금은 걷기 불편한 것을 제외하고는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다. 지난 5년 병마와 싸우면서도 놓지 않은 일이 있다. 다산 정약용의 주역 해석을 토대로 자신이 14년 전 쓴 주역 저술의 개정판을 내는 일이다. 최근 3천장이 넘는 원고를 마무리하고 출간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9일 중국 산둥성 등주에서 열리는 국제묵자학술대회에서 기조발제도 할 예정이다. 기 선생을 지난달 28일 대전 자택에서 만났다.
그의 호는 묵점이다. 중국 고대 사상가 묵자와 고향인 전북 정읍 먹점마을에서 한 자씩 땄다. 그는 1992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묵자를 완역 출판했다. 고 신영복 교수는 묵자를 두고 “반전, 평화, 평등사상을 주장하고 실천한 기층 민중 출신의 좌파 사상가”라고 썼다. 묵가 사상의 핵심은 겸애와 교리다. 모두를 차별 없이 사랑하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묵자는 유교가 예와 악을 과도하게 중시해 민중의 삶을 힘들게 한다고 공격했다. 유교적 질서가 충만한 조선에서 묵자가 이단 중의 이단이 된 이유다. 묵가는 중국 전국시대만 해도 유가와 쌍벽을 이뤘지만 기원전 1세기 이후 유교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를 총칭할 때는 의례 ‘공·묵 등 제자백가’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묵자는 사마천 <사기>(기원전 97년) 열전에도 나오지 않고 ‘맹자순경열전’ 끝머리에 스물네 글자로 짤막하게 언급되어 있어요. 회남왕 유안이 기원전 122년 <회남자>를 발간할 당시에도 묵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했어요. 한 무제가 동중서 건의를 받아 유교를 국교로 삼은 뒤 묵가들이 흩어지고 숨어버렸다는 견해가 신빙성이 있어요.” 2천년 뒤인 1894년 청나라 학자 손이양(1848-1908)이 <묵자한고>를 펴낸 뒤에야 묵자의 사유가 다시 실체를 드러냈다. 이 땅에선 묵자 완역본이 나오기까지 100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기 선생은 묵자와 어떻게 만났을까?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된 뒤 공직 생활을 청산하고 학원강사와 공장에서 기계 설계를 하고 있을 때 중국동포 유학생 김향철 박사를 통해 묵자에 대한 몇 권의 중국 서적을 접했어요. 소스라치게 놀랐죠. 묵자에게서 예수와 마르크스를 봤기 때문이죠.”
그는 11회째인 이번 학술대회를 위해 두 개의 글을 준비했다. 기조발제에선 ‘묵자의 경제사상과 자본주의’, 10일 분임토론에서 ‘묵자는 기독교 개혁의 불씨일까’란 제목의 글을 발표한다. 동양철학을 두루 섭렵한 그이지만 기독교와의 인연도 깊다. 전주사범학교에 다닐 땐 목사를 꿈꾸며 기독학생회 회장을 지냈다. 아버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할머니와 어머니를 위해 고향 마을에 교회당을 짓기도 했다. 묵자를 완역한 1992년 말부터 석 달 가까이 옥중의 고 문익환 목사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예수와 묵자>(1994, 개정판은 2009년)를 펴내기도 했다. 이 편지에서 문 목사는 “묵자와 예수는 거의 쌍둥이 같은 느낌을 준다. 한 줄기에서 뻗은 두 가지라고 해야 할 것 같다”고 기 선생의 묵자 번역본을 읽은 소회를 적었다. “문익환 목사께서 기독교 개혁의 불씨가 될 수 있으니 ‘묵자 교회’를 열라고 격려하기도 하셨어요.” 두 사람은 모세의 야훼 신앙을 두고는 생각이 달랐다. “유목민의 신인 야훼는 전쟁과 살육의 신이었고, 인간은 야훼의 종에 불과했다”는 기 선생의 견해에 대해 문 목사는 “유목민은 농경지에서 밀려난 소외계층이었으며 평화와 평등을 원했다. 애굽의 종이 된 히브리 노예 해방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야훼는 세계를 침략, 정복, 착취한 백인 기독교의 신과 같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9일 등주 ‘국제묵자대회’ 기조발제
원고에 ‘교황의 북한 방문’ 희망
중국쪽 ‘수정요청’ 등 민감 반응 14년 전 ‘주역 해설서’ 스스로 절판
“다산의 새로운 해석 알고 자괴감”
개정판 전자출판해 무료공개 검토 기 선생은 이번 발표에서 묵자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유사성을 밝히고, 기독교가 ‘포악한 전쟁의 신’ 야훼와 결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생각이다. “종교와 이념과 경제체제의 모든 근본주의를 경계하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에 전 세계 지도자들이 화답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할 예정이다. “묵자한테 의(義)의 근원은 천제였고, 인민을 이롭게 하는 게 바로 의였어요. 묵자는 유일한 어록인 <묵자>에서 천제를 300여 차례나 언급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천제의 자식이므로 천제는 천하 만민을 자애하고 차별하지 않는다는 게 묵자의 평등사상이죠. 예수의 산상수훈을 읽을 때마다 묵자의 말로 착각할 정도로 감명을 받습니다.” 그가 보기에 기독교 문명의 뿌리에는 ‘전쟁신 야훼’가 있다. 지금도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문화를 말살하는 또 다른 십자군 전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정치적 의도로 예수를 전쟁신 야훼의 아들로 만들었어요. 야훼는 예수가 믿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덧붙였다. “예수가 ‘제도적 전쟁’에 대해 침묵한 것은 사실이죠. 묵자와 같이 ‘남의 나라를 내 나라처럼 사랑하라’고 말하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예수는 야훼를 봉헌한 성전을 철거하라고 했잖아요. 이웃에 대한 절대 사랑을 이야기했죠.” 그는 “제국주의 패권국가와 전쟁신의 결합은 ‘평화의 사도’ 예수의 바람과는 반대로 세상을 약육강식 전쟁터로 만들었다”면서 십자군 전쟁이나 히틀러의 광기, 세계화의 폐해 등이 그 보기라고 했다. “해방신학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혁명으로 군산종(군대와 산업, 종교) 복합체에 균열이 생기고 있어요. 교황의 가르침은 묵자의 천제론과 일치합니다. 인류가 살려면 열린 사고가 필요합니다. 묵자는 다름이 있어야 같음이 있다고 했죠.” ‘다름이 있어야 같음도 있을 수 있다. 같음이 있어야 다름도 있을 수 있다.’ ‘이단을 보존해야만 대동이 있다.’ ‘동과 이는 서로 상보한다.’ ‘같음이란 다른 것들이 함께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근본주의와 맞선 묵자의 열린 사고를 보여주는 <묵자> 글귀들이다. 묵자 경제사상의 현재적 의미를 살핀 발제문에선 묵자 절용론을 앞세워 자본주의 세계화의 문제를 드러낼 생각이다. “국부론을 주장한 순자는 묵자 절용론이 국가를 더욱 곤궁하게 한다고 비판했어요. 순자는 문화적 소비가 생산을 더욱 늘린다고 생각했죠. 장자도 절용을 내세워 음악과 장례와 문화를 비난하는 묵자의 도는 사람의 인정에 반하며 천하가 감당할 수 없다고 봤어요. 내 생각엔 장자는 묵자를 곡해했어요. 묵자는 인간의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중시했어요. 다만 전쟁으로 인한 지배자들의 무용한 초과소비 때문에 인민이 초과노동 고통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이었죠. 묵자도 인민이 여유롭게 살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와 문화를 재화의 소비양식으로 파악한 이는 인류 역사상 묵자가 처음입니다.” 이 논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 말처럼 자본주의 세계화는 불공정한 시스템이다. 지구를 보존하고 인류 멸절을 피하려면 자본주의는 자연중심 인간중심으로 지양되어야 한다.’
국제묵자학술대회는 2년에 한 번씩 열린다. 한·중을 비롯해 미국과 독일, 일본, 대만, 홍콩 등의 학자들이 참석한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에서 ‘좌파 사상가’ 묵자는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중국에서 묵자는 반전평화 사상가라기보다는 무기를 만든 기술자로 추앙받고 있어요. 중국 학술계도 우리와 비슷하게 정치 영향을 받지요. 기술만 너무 강조해 기분이 나빠서 10회 땐 불참했어요.” 묵자는 전쟁은 결코 이익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무기를 만들어 방어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런 반전평화 사상은 빼고 ‘기술의 비조’란 점만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 묵자학회는 묵자와 동시대에 공격 무기를 만든 공수반을 조명하는 학회와 공동으로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중국 쪽은 이번에 내가 쓴 기조발제에 포함된 ‘인민 통제를 벗어난 자본주의 비판’, ‘교황의 북한 방문 요청’ 대목 등도 수정해 달라고 요청해왔어요. 다른 건 몰라도 교황 방북 건은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2002년 주역 해설서를 출간한 뒤 1년 뒤 절판시켰다. 다산의 주역 해석(주역사전)이 그가 권위를 의심하지 않았던 북송 유학자 정이와 주희의 해석과 다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다산의 주역 해석을 접한 뒤 “자괴감에 며칠 동안 멍때리기에 빠졌다”고 했다. “정이와 주희는 주 문왕과 주공의 말씀을 봉건왕조에 맞게 의리(義理)학으로 풉니다. 다산은 의리를 떠나 문왕과 주공의 생각을 형상으로만, 즉 도그마가 없는 상징으로만 해석합니다.” 첫 권은 정이와 주희, 다산의 주석을 배치하고 둘째 권은 주역점을 치는 사전으로 꾸밀 생각이다. “다산의 주역을 널리 알리기 위해 책을 전자책으로 무료 공개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어요.”
대전/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기세춘 선생
원고에 ‘교황의 북한 방문’ 희망
중국쪽 ‘수정요청’ 등 민감 반응 14년 전 ‘주역 해설서’ 스스로 절판
“다산의 새로운 해석 알고 자괴감”
개정판 전자출판해 무료공개 검토 기 선생은 이번 발표에서 묵자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유사성을 밝히고, 기독교가 ‘포악한 전쟁의 신’ 야훼와 결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생각이다. “종교와 이념과 경제체제의 모든 근본주의를 경계하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에 전 세계 지도자들이 화답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할 예정이다. “묵자한테 의(義)의 근원은 천제였고, 인민을 이롭게 하는 게 바로 의였어요. 묵자는 유일한 어록인 <묵자>에서 천제를 300여 차례나 언급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천제의 자식이므로 천제는 천하 만민을 자애하고 차별하지 않는다는 게 묵자의 평등사상이죠. 예수의 산상수훈을 읽을 때마다 묵자의 말로 착각할 정도로 감명을 받습니다.” 그가 보기에 기독교 문명의 뿌리에는 ‘전쟁신 야훼’가 있다. 지금도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문화를 말살하는 또 다른 십자군 전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정치적 의도로 예수를 전쟁신 야훼의 아들로 만들었어요. 야훼는 예수가 믿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덧붙였다. “예수가 ‘제도적 전쟁’에 대해 침묵한 것은 사실이죠. 묵자와 같이 ‘남의 나라를 내 나라처럼 사랑하라’고 말하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예수는 야훼를 봉헌한 성전을 철거하라고 했잖아요. 이웃에 대한 절대 사랑을 이야기했죠.” 그는 “제국주의 패권국가와 전쟁신의 결합은 ‘평화의 사도’ 예수의 바람과는 반대로 세상을 약육강식 전쟁터로 만들었다”면서 십자군 전쟁이나 히틀러의 광기, 세계화의 폐해 등이 그 보기라고 했다. “해방신학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혁명으로 군산종(군대와 산업, 종교) 복합체에 균열이 생기고 있어요. 교황의 가르침은 묵자의 천제론과 일치합니다. 인류가 살려면 열린 사고가 필요합니다. 묵자는 다름이 있어야 같음이 있다고 했죠.” ‘다름이 있어야 같음도 있을 수 있다. 같음이 있어야 다름도 있을 수 있다.’ ‘이단을 보존해야만 대동이 있다.’ ‘동과 이는 서로 상보한다.’ ‘같음이란 다른 것들이 함께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근본주의와 맞선 묵자의 열린 사고를 보여주는 <묵자> 글귀들이다. 묵자 경제사상의 현재적 의미를 살핀 발제문에선 묵자 절용론을 앞세워 자본주의 세계화의 문제를 드러낼 생각이다. “국부론을 주장한 순자는 묵자 절용론이 국가를 더욱 곤궁하게 한다고 비판했어요. 순자는 문화적 소비가 생산을 더욱 늘린다고 생각했죠. 장자도 절용을 내세워 음악과 장례와 문화를 비난하는 묵자의 도는 사람의 인정에 반하며 천하가 감당할 수 없다고 봤어요. 내 생각엔 장자는 묵자를 곡해했어요. 묵자는 인간의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중시했어요. 다만 전쟁으로 인한 지배자들의 무용한 초과소비 때문에 인민이 초과노동 고통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이었죠. 묵자도 인민이 여유롭게 살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와 문화를 재화의 소비양식으로 파악한 이는 인류 역사상 묵자가 처음입니다.” 이 논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 말처럼 자본주의 세계화는 불공정한 시스템이다. 지구를 보존하고 인류 멸절을 피하려면 자본주의는 자연중심 인간중심으로 지양되어야 한다.’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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