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구밀료프 지음, 권기돈 옮김/새물결·3만2000원 박트리아의 황금비보
V. I. 사리아니디 지음, 민병훈 옮김/통천문화사·3만5000원 유럽과 동아시아 중심으로 쓰인 세계사에서 중앙아시아의 대초원은 ‘빈 공간’ 취급을 당했다. 관심이 있다면 비단길 정도. 중앙아시아 초원이 뜨거운 역사의 현장임을 보여주는 책들이 나왔다. <상상의 왕국을 찾아서>는 서기 800~1300년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펼쳐진 광대한 이 지역의 정치와 종교, 문학을 한데 묶는다. 투르크 한국의 몰락에서 몽골 제국 형성에 이르는 기간이다. 러시아 역사학자인 레프 구밀료프(1912~1992)의 대표작으로 중세 유럽사와 중세 중국사 사이에 존재하는 빈 공간을 채워준다. 지은이는 익히 본 적 없는 역사 서술과 방법론을 선보인다. 출발 지점부터 ‘프레스터 요한의 왕국’ 전설이다. 중세 유럽에선 이슬람 세력의 배후에 기독교 왕국이 있다는 전설이 널리 퍼졌고, 500년 이상 이를 굳게 믿었다. 그냥 전설을 다룬 헛소리만은 아니다. 전설과 사실을 넘나드는 지은이의 ‘입담’은 이윽고 칭기즈칸의 역사를 다룬 <원조비사>와 러시아 민족 탄생기인 <이고르 원정기>의 미시적 분석으로 나아간다. 책은 기존의 민족주의 담론을 넘어 ‘역사학의 새로운 상상력’을 접하는 지적 모험이 될 듯하다. 5부로 구성됐는데, 책상·조감·언덕을 모두 삼면경으로 살핀다. 목표로 삼은 시공간을 보려면, 하늘에서 내려다보기도 하고, 언덕에서 조망할 때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쥐구멍의 삼면경’은 개별 인물사이다. ‘잔혹한 몽골족’이라는 유럽 쪽 담론은 사실 십자군이 조작한 것이며, 실제 몽골족은 대단히 합리적인 면모를 갖췄다는 사실도 밝혀낸다. 지은이는 서문에 “이 책을 형제 같은 몽골 민족에게 바친다”고 적었다. ‘범아시아주의’를 주창한 그는 러시아혁명 당시 백위군 장교의 아들로 1938~56년 중앙아시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생활했으며, 그 기간 중앙아시아의 언어와 역사를 몸으로 배웠다. <박트리아의 황금비보>는 고대 동서문명교류의 중심지였던 아프가니스탄 북부(옛 박트리아) 틸랴테페 유적의 생생한 발굴기록들을 담고 있다. 틸랴테페는 원래 ‘평범한’ 언덕배기였지만, 1978년 고대 질그릇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눈여겨본 소련 고고학자들의 발굴로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께 유목민 무덤 7기가 드러났다. 2만점 가까운 황금유물이 쏟아지면서 일약 ‘중앙아시아의 투탕카멘’이란 별칭도 얻었다. 신라 금관의 뿌리로 꼽히는 1세기께 금관도 여기서 나왔다. 책은 발굴을 주도한 빅토르 사리아니디(1929~2013)가 1980년대에 낸 간이 보고서와 도록 등을 함께 엮었다. 나무세움장식 금관과 아프로디테상, 전사상, 숫양상 등 출토품의 칼라 도판이 책 보는 맛을 더한다. 민병훈 전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장이 7년에 걸쳐 우리말로 옮기고 장문의 해설까지 붙였다. 틸랴테페 무덤떼의 황금유물들을 선보이는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 특별전(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9월4일까지)에 때맞춰 출간됐다. 안창현 노형석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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