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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콜럼바인 총기참사 가해자 어머니의 기록

등록 2016-07-14 19:58수정 2016-07-15 08:48

1999년 17살 아들이 저지른 사건
비극의 여파 속 가해자 가족의 삶
트라우마를 예방으로 전환 노력

2009년 4월20일 미국 콜로라도주 리틀턴 외곽에서 열린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10주기 추모행사에서 참가한 이들의 그림자가 추모관 벽에 드리워져 있다. 리틀턴/AP 연합뉴스
2009년 4월20일 미국 콜로라도주 리틀턴 외곽에서 열린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10주기 추모행사에서 참가한 이들의 그림자가 추모관 벽에 드리워져 있다. 리틀턴/AP 연합뉴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반비·1만7000원

고통은 설명되어야 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은 그 자체로 무간지옥이다. 일상을 부수고 들어온 고통을 밀어내기 위해선 그 사람 혹은 그 사건이 내게 왜 이러는 건지 알아야 한다.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참사일수록 고통의 원인에 대한 갈구는 커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보다 눈앞에 있는 악마적 개인을 재빨리 고통의 근원으로 소환하는 까닭이다. 이 소환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 행동을 이해하는 척하면서 우리 스스로가 그 개인의 악마성을 설명하는 범주에 들어가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우리’와 ‘악마적 개인’을 구분지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구분 짓기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가 한 개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진실에 있다. 특히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했던 종이접기의 패턴과 복잡한 주름까지 기억하고, 처음 롤러스케이트를 타던 날 넘어진 아이가 무슨 표정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되뇔 수 있는 부모라고 해도, 종국에는 그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이 진실을 부정한다. 세상에서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확신한다. 수 클리볼드도 그런 부모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1999년 4월20일 이후 그런 확신은 극심한 고통이 되어 16년 동안 수를 짓밟았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1999년 4월20일 미국에서 발생한 콜럼바인 총기참사 가해자 2명 가운데 하나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가 딜런과 딜런이 일으킨 참사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바친 16년의 기록이다. 이 기록은 고통과 절망, 후회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수의 결론은 이렇다. 딜런이 참사를 일으킨 원인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어쩌면, 자식을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책은 피해자 유가족과 사회의 반발이 예상되는 이 결론으로 가는 과정이 어떤 노력과 고통 속에서 이뤄졌는지 기록한다. 평범한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참사 속 당사자의 가족이 되는 순간이 그 시작이다. 아들의 죽음, 그리고 다른 아이들의 집단적 죽음을 일으킨 이가 바로 그 아들이라는 사실의 인지. 심지어 이 때문에 아들이 자살하기를 바랐던 순간과 이에 대한 후회. 자신이 알고 있던 아들의 모습이 사실은 부분에 불과했다는 진실과 이로 인해 자기 자신마저 부정해야 하는 경험. 사회가 던지는 아들의 악마성에 대한 낙인이 날아와 온몸에 박히는 나날들. “어떻게 모를 수 있어요?”라고 묻고 “그런 증오는 집에서 배웠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수많은 눈초리. 옳은 일을 가르치고 사랑으로 감싸면 아이가 어긋나지 않는다는 신념이 순식간에 어그러질 때 다가오는 인식 체계의 붕괴가 기록 안에 생생하다.

하지만 수는 고통과 절망 속에 갇혀 있지만은 않았다. 학생과 교사 13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했다고 기록되는 콜럼바인 총기참사에서 사망자가 2명 더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 애써 외면되어 왔다. 참사 직후 자살한 가해자 에릭 해리스와 딜런이다. 지금까지의 기록은 고통 속에 숨져간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집중됐다. 수는 딜런 역시 고통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에 몰두했다. 에릭과 딜런이 남긴 기록들을 보면, 살해 성향 반사회적 인격 장애였던 에릭과 달리 딜런은 자살 성향 우울증 환자로 추정된다. 딜런의 자살 충동은 에릭의 폭력성과 결합하면서 죽고 싶은 욕구에 죽이고 싶은 욕구를 보태게 된다. 그러니 시작은 ‘죽고 싶은 욕구’에 대한 분석이다.

수는 이 지점에서 자살이 정신 질환의 결과물이라는 견해를 내놓는다. 그리고 말한다. “(자살을) 마치 좌절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바라보게끔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일도, 자살로 이르는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일도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만큼 쉽지 않지만 수는 부모와 사회가 이 일에 개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니 이 책은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총기참사의 전범이 되고 있는 콜럼바인 총기참사의 트라우마를 예방의 시초로 전환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다.

책을 읽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이 책은 콜럼바인 총기참사를 다룬 그 어떤 저널리즘보다 강력하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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