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누운 배’
중국 진출 한국 조선소가 무대
회사의 본질, 초사실주의 묘사
중국 진출 한국 조선소가 무대
회사의 본질, 초사실주의 묘사
이혁진 지음/한겨레출판·1만3000원 회사란 일반적으로 상행위를 목적으로 삼는 사단법인을 가리킨다. 그러나 언론사나 연구소, 학교나 정부 기관에 근무하는 이들도 자신의 직장을 회사라 일컫는 데에서 보듯, ‘회사’는 근무 대가로 봉급을 받는 직장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그 뜻이 넓어졌다. 제21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이혁진의 소설 <누운 배>는 바로 그 회사의 본질과 한계를 파고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자면 돈벌이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고 그 벌이는 대체로 회사를 매개로 삼게 마련인데, 한국 문학에는 뜻밖에도 ‘회사’와 정면 대결을 펼친 작품이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누운 배>는 한국 문학의 중요한 공백을 메운 문제적인 작품이다. “문서란 엉성하고 허술한 현실에서 부스스 떨어져 내린 각질에 불과했다. 하지만 누가 문서를 우습게 보는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이 문서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현실을, 회사를, 정부나 국가를, 종교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누운 배 한 척이 그렇게 됐듯 사실이라는 것은, 참이나 거짓이라는 것은 힘으로 쥐고 흔들 수 있었다. 세상은 성기고 흐릿한 실체였다. 그것을 움켜쥔 힘만이 억세고 선명했다.” 인용문에서 문서는 회사를 비롯해, 실체가 불분명하면서도 힘으로 사람을 제압하는 온갖 것들을 상징한다. 인용문이 등장하는 대목은 주인공 ‘문 대리’가 근무하는 중국 소재 한국 조선 회사에서 건조 중인 배가 쓰러지는 사고가 난 뒤 보험사와 실랑이를 벌인 끝에 사고 원인과 그에 따른 피해액 및 보상금을 산출하기까지, 참과 거짓을 넘나들며 작성된 보고서에 대한 주인공의 상념을 담았다. 소설 전반부는 ‘누운 배’를 둘러싼 조선 회사와 보험사 사이의 각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불거지는 사내 정치와 줄서기 같은 천태만상을 그린다. 어디까지나 회사원인 주인공은 그 장단에 휩쓸려 정신없이 돌아치기는 하는데, 그것은 노동의 신성함이나 성취감 또는 보람과는 거리가 멀다. 존재와 노동의 괴리를 포착한 아래 인용문에 격하게 공감하는 회사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퇴근 버스 막차에 올라타면 온종일 바쁘기는 엄청나게 바빴는데 정작 어떤 일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나를 거쳐가는 것 같았다. 매일 쓰레기 치우듯 일을 치워나갔다. 현관문을 닫고 들어오면 녹아내릴 듯 피곤했고 침대에 벌렁 누우면 방전당한 듯 허탈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사장이 물러나고 채권단이 임명한 황 사장이 새로 부임한다. 소설 후반부는 황 사장이 시도하는 혁신의 성과와 그에 대한 반발을 다룬다. 문 대리와 작가는 회사 내부의 부조리와 비효율을 혁파하는 황 사장의 혁신에 대체로 긍정적인데, 개발독재를 연상시키는 그의 개혁 조처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토론의 주제로 삼을 수도 있을 법하다. 보험사한테서 충분한 보상금을 받아낸 뒤 회장은 난데없이 사고난 배를 다시 일으키라는 지시를 내리고 직원들은 악전고투 끝에 배를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2년 동안 물에 잠겨 있던 부분은 썩을 대로 썩었고, 배는 결국 고철로나 팔리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주인공이 내린 결론. “배만 썩은 것이 아니었다. 회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에 잠겨 썩은 부분은 회사의 부패한 본질을 상징한다. 회장의 독단과 그를 믿고 날뛰는 사내 기득권 세력의 훼방에 “불굴의 투사, 불요의 혁신가” 황 사장의 혁신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그는 또 다른 사고를 계기로 결국 회사를 떠난다. 주인공 역시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내부에서 무너져 내리고 스스로 부스러지고 짜부라지는 몰락,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썩은 배처럼 참혹하고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의 예감이 그의 결심을 부추긴다. 서른둘 나이에, 3년간 근무한 회사를 그만두면서 주인공은 글을 쓰기로 하는데, 이 대목에서 소설은 기업 소설이자 성장 소설의 얼굴을 함께 지니게 된다. 조선업의 구체적 공정과 회사 업무, 보험금 산출 등에 관련된 어휘들은 이야기의 사실성을 높임은 물론 일종의 ‘낯설게하기’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속도감 있는 단문은 회사의 본질을 파고드는 소설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한다. 묵직한 주제의식과 섬세한 묘사가 어우러져 리얼리즘 소설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젖힌 수작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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