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잘 지내나요? - 현대 가족의 일과 삶과 사랑의 공감 지도 그리기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이계순 옮김/이매진·1만8000원
책 제목만 보면, 신자유주의 시대 가족 최고경영자인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자기계발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지은이가 <감정노동>(1983)으로 유명한 앨리 러셀 혹실드(76·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라는 데 이르면, 좀 다르겠구나 기대하게 된다. 기대대로다.
혹실드는 1960년대부터 공공의 문제와 가족이라는 사적 세계를 연결해온 미국의 ‘감정사회학자’이자 사회학 저술가. 2013년 미국에서 출판된 <가족은 잘 지내나요?>는 인종, 역사, 문화적 맥락에 따라 여성의 감정이 어떻게 구조화하고 상품화하는지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국경을 넘는 제3세계 여성의 고통스러운 돌봄노동, 끈끈한 가족관계와 사랑마저 깔끔한 시장 영역으로 들여온 ‘자유시장 가족관’의 어두운 이면을 낱낱이 들춘다.
시장화한 가족관계의 한가지 예가 ‘임대 엄마’ 사업이다. 지은이가 인터뷰했던 한 미국 주부는 감사할 줄 모르는 남편에 질려 12년 만에 이혼한 뒤 사업을 시작했다. 집에서 하던 공짜 가사·돌봄노동을 돈 받고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임대 엄마’는 집 청소, 옷 손질, 음식하기, 애들 보살피기, 정원 가꾸기 같은 가치에 시장 가격을 매겼다. 엄마 노릇은 시장 구매 서비스로 탈바꿈했다.
‘단란한 가족’은 이제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감정사회학자 혹실드는 불평등이 가속화하면서 사생활의 상품화가 초래하는 고통과 위협을 경고한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사랑에 목마른 이들을 위한 서비스도 있다. 좀 더 안전한 데이트와 성생활을 위해 섬세하게 설계하고 조언하는 ‘러브 코치’다. 사랑 고백은 점점 대행 업체를 끼고 하는 것으로 변모했고, 우정도 친구찾기 서비스를 해주는 시장의 영향을 받으며 빠르게 재구성된다. 미국인의 28%가 혼자 사는 이 시대, 시장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도 단란한 가정의 문화를 판매한다. 1인 가구의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도그 워커’도 필요에 의한 시장 창출인지, 시장에 따른 수요 창출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건 시장이 감정, 관계에 개입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은 가정과 기업의 경계도 무너뜨린다. 기업의 경영 컨설팅을 해주는 회사는 (주로 돈 많고 시간 없는 남성) 고객이 가정에서 부모·배우자 노릇을 제대로 하는지 평가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준다. ‘가족관계 강화를 위한 발전 계획’을 세우고 고객이 가족에게 투입할 시간 전략도 짜준다. 가정 경영은 기업 경영과 정말 다를 바가 없어진 것이다.
부부 친밀감과 최소한의 양육을 제외한 모든 것이 외주화되는 흐름은 ‘시장의 시대정신’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혹실드는 말한다. 시장의 시대정신은 “더 자유로운 시장이 어떤 문제라도 풀 수 있는 최고의 해결책이라고 믿는 확고한 신념”을 가리킨다. 사생활의 시장화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족이(주로 여성이) 수행해야 할 돌봄노동 영역에서 잘 나타난다. 가사도우미, 아이 돌보미, 간병인, 장례지도사, 아이들 수면전문가, 출산 파티 기획자 같은 직업군이 포함된다.
사적인 삶을 상품화한 시장에서 서비스 노동을 판매하는 이들은 주로 여성이다. 2013년 초 현재 ‘상업 대리모’가 합법인 인도에서 예비 대리모들은 언제든 임신할 준비가 돼 있으며 임신 클리닉의 충고에 따라 자기 자궁을 ‘운반체’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신의 아이를 친족에게 맡기고 제1세계로 떠나온 제3세계 여성 이주노동자들, 대리모들은 이런 구조적 비극 속에 큰 감정적 희생을 치른다. 친척집에서 ‘눈칫밥’ 먹는 아이들의 갈등이나 고통도 예외가 아니다. 2010년 세계은행이 공식 집계한 이주노동자의 송금액은 필리핀의 경우 국내총생산의 12%에 이른다고 하지만 이 여성들의 송금은 일자리 창출이나 지역경제 투자 같은 일보다 그저 남은 가족을 겨우 먹여 살리는 데 쓰이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지은이는 분석했다. 불평등은 재생산된다. 이 아이들 역시 이주노동에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시장에 좋은 것이 가족에도 좋다는 ‘자유시장 가족관’이 지배적일수록 여성의 고민은 깊어지고 입장은 애매해진다. 여성이 여성을 고용하고 억압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부장적 가족구조와 성별이분법에 따라 여성이 가사노동을 담당하도록 고착화 돼있다는 점. 가사노동과 재생산은 남녀 모두의 문제임에도 남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책임은 여성에게 전가된다. 국경을 넘는 여성노동, 가사노동과 재생산이 여성들만의 고민이 아닌 이유다. 혹실드는 해결의 열쇠를 공감에서 찾는다. 대개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이타적인 가치관을 더 많이 지닌다는 연구 결과를 언급하며 그는 “공감의 영역에서, 여성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물론 많은 남성들도 공감 영역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지옥 같은 이 세계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일구려면 “사회 계층과 인종과 성별의 장벽을 넘어 공감해야 한다”고 혹실드는 거듭 말한다.
거의 반백년 동안 여성 노동을 고민해온 이 여성 사회학자는 돌봄노동, 감정노동이 전사회적·전지구적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점을 빼놓지 않는다. 국경을 넘어 엄마들이 이동하지 않아도 되도록 남반구와 북반구의 경제적 차이를 줄이라고 요구하는 것,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북아메리카자유무역협정 등에 압력을 가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 전에 물론, 다음과 같은 인식의 길잡이를 마련하는 일이 먼저다. “자유시장은 자유시장의 체제 자체를 영속시키는 일 빼고는 다른 목적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자유시장에 좋은 것이 가족에게 모두 좋을 리 없는 이유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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