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적의 친구
김이듬 지음/난다·1만4000원
불과 얼마 전 슬로베니아 체류 경험을 담은 여행 에세이 <디어 슬로베니아>를 냈던 김이듬 시인이 이번엔 파리와 그곳 사람들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낸 책 <모든 국적의 친구>를 내놓았다. ‘내가 만난 스물네명의 파리지앵’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파리에서 만난 인물 24명에게 김이듬 시인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들은 기록이다. 시인·음악인·무대미술가·사진작가 같은 예술가들, 대학교수와 학생, 한국인 유학생들, 바리스타와 노숙 철학자 등으로 신분이 다채롭다. 개별 인터뷰 분량은 소략한 편이지만, 그 안에도 번뜩이는 통찰과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가 있다.
“문학적 장르로서의 ‘시’가 없는 정치적 시는 공허하다”면서도 “정치적이지 않지만 좋은 시는 물론 가능하지만 이것은 중요한 무언가를 놓친 것이다. (…)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인간적이고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시가 필요하다”는 시인 프랑시스 콩브(사진 왼쪽), “이슬람 율법의 폭력적 억압, 빈부격차, 인권침해, 여성비하를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서 10년 전 고국 알제리를 떠나 파리로 도망쳐 왔지만 여전히 프랑스 국적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 임금의 10분의 1을 받는데다 공연 팸플릿에도 이름이 적히지 않는 무대미술가 아미나 르지그, 생물학 전공으로 대학 졸업시험을 통과했고 멀지 않은 곳에 어머니와 여동생이 사는 집이 있음에도 “보편적인 사회 질서에 의문을 갖고 있고 그에 따르지 않을 뿐”이라며 노숙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노숙 철학자 크날 크리스….
김이듬 시인은 인터뷰 대상자의 이야기를 듣고 온 밤이나 새벽에는 그 이야기를 모티브 삼은 시를 쓰기도 했다. 가령 한국에서 입양된 도서관 사서 가엘 리좀을 인터뷰한 다음날 쓴 시 ‘조국’의 일부는 이러하다.
“네가 온다니까 내 애인이 좋아하더라/ 예쁜 친구를 애인에게 소개하는 것처럼 인천을 말하기도 그런지// 가엘은 그 바닷가에서 태어나 한국 나이로 세 살 때 입양되어 왔다/ 지금은 로맹빌 도서관 사서로 일한다// 우리는 웃지 않고 한국에 관해 한국어가 아닌 말로 말했다 태어났으나 가보지 못한 그곳의 기후와 쌀, 막걸리 등 끝없이 우리가 증오하지 않는 것들에 관해”
최재봉 기자, 사진 위성환 사진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