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재의 의미
에드워드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사이언스북스·1만9500원
2014년에 출간됐으니, 1929년생인 에드워드 윌슨(사진)이 여든다섯에 펴낸 책이다. 한글판으론 첫 번역서다.
심대한 충격과 격렬한 논쟁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1975년작 <사회생물학>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사했던 노학자는 팸플릿을 연상시키는 이 얇은 책자에서 다시금 묻고 있다. ‘우리(인간)는 왜 존재하는가.’
그가 보기에, 인간은 경쟁과 협력을 병행하는 고도로 발달한 사회적 행동 습성을 바탕으로 오늘날 이만한 지성과 문명을 일궈냈다. 그것은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낸 사건들의 누적, ‘도전’에 대한 ‘응전’의 결과일 뿐이다. 초자연적 설계의 산물도 아니고, 예정된 목적의 실현은 더더욱 아니다. “현실 세계에 관한 지식이 늘어나면서 그런 해석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왔다.”
인간이란 종이 지닌 진정한 사회적 조건, 즉 ‘진사회성’(eusociality)은 집단 내부 개체와 개체 사이, 또 집단과 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경쟁과 협력을 촉진한 ‘다수준 선택’의 소산이라고 윌슨은 설명한다. 그리고 그런 진화의 ‘종착점’에 다다르고 있는 오늘날, 인류는 이 다수준 선택이 던져준 숙제 앞에서 갈등하는 존재가 돼 있다.
“개체 선택에서 비롯된 본능적인 충동에 (우리를) 완전히 내맡긴다면, 사회는 해체될 것이다. 반대편 극단인 집단 선택에서 비롯된 충동에 굴복한다면, 우리는 천사 같은 로봇이 될 것이다. 거대해진 개미와 다름없어질 것이다.”
그런 비극적 결말을 피하기 위해, 인류의 장기 생존에 중요한 것은 높은 수준의 독립적 사고를 토대로 하는 지적인 자기 이해라고 윌슨은 말한다. 과학과 인문학이 총동원돼도 풀동말동한 과제인데, 두 거대 학문은 분열과 분리의 ‘협곡’을 사이에 두고 여전히 제 길을 가고 있다. 윌슨은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지속 가능한 자유와 책임을 위하여’ 과학과 인문학의 수렴과 통일을 지향하는 새로운 계몽운동을 주창한다. 인류가 “점점 더 인본주의적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탐험의 주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작은 판형에 200쪽 남짓한 이 책엔 윌슨이 평생 지녀온 문제의식과 학문적 성취가 응축돼 있다. 여태 낸 모든 책의 집약판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문과 잡지에 썼던 글이라 빠르고 쉽게 읽히지만, 함의와 여운은 깊고 길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사진 사이언스북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