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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남로당 아버지 소설로 썼는데, 발표 지면 마땅치 않네요…”

등록 2016-07-28 19:19수정 2016-07-28 19:31

‘만다라’ 작가 김성동의 사부곡
중편 ‘고추잠자리’ 완성했으나
발표 지면 못 찾아 발만 동동
남로당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 중편소설 ‘고추잠자리’를 탈고한 작가 김성동. “분단문학, 통일지향적 문학을 접어두는 문단 분위기를 알지만 누군가는 이런 소설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1년 12월 그가 기거하는 경기도 양평군 ‘비사란야’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남로당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 중편소설 ‘고추잠자리’를 탈고한 작가 김성동. “분단문학, 통일지향적 문학을 접어두는 문단 분위기를 알지만 누군가는 이런 소설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1년 12월 그가 기거하는 경기도 양평군 ‘비사란야’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제가 소설가가 된 건 오로지 아버지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였습니다. 절에 들어간 것도 그렇고, 제 삶의 모든 게 아버지의 죽음과 분단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이죠. 아버지가 1917년생이시니까 조선 나이로 올해 100세입니다. 아버지께 제사를 올리고 향불을 피우는 심정으로 쓴 소설입니다.”

소설가 김성동(69)이 남로당원으로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다가 전쟁 중에 학살당한 부친의 이야기를 쓴 중편소설 ‘고추잠자리-제망부가(祭亡父歌)’를 완성해 놓고도 발표 지면을 찾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 원고지 250장에 육박하는 이 소설은 남로당 지도자 박헌영의 비선(秘線)으로 충청남도 일대를 맡는 ‘야체이카’(세포)였던 작가의 아버지 김봉한(1917~1950)의 활동상을 그렸다. 남로당 외곽 단체 성원들을 상대로 사상 교육을 하거나 투쟁 지침을 내리는가 하면 무장대를 꾸리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던 그가 돌을 앞둔 아들(김성동)의 얼굴을 보고자 고향 집에 들렀다가 서북청년단 출신들에게 체포되는 장면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실제로 김봉한은 1948년 늦가을 서북청년단 출신 서울시경찰국 특별경찰대에 체포되어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2심을 기다리던 중 전쟁이 터지자 다른 좌익 사범들과 함께 대전 산내 골령골(대전시 동구 낭월동)로 끌려가 처형됐다. 김성동은 지난달 27일 산내 희생자 위령제에 참가해 추모사를 읽기도 했다.

“차분한 목소리로 혁명가의 올바른 자세와 조선 현실이며 제국주의로서 미국 본질을 말해주던 이정(而丁, 박헌영) 선생도, 정연한 논리로 조선 운명 현층층대를 짚어주던 화산(火山, 이현상) 선생도 이제는 뵐 수가 없다. 조선공산당에 들어가 한밭에서 야체이카로 움직이던 약관 나이 때부터 이관술 선생과 함께 혁명 스승으로 모시던 리현상 선생님은 시방 려수순천서 일떠선 인민해방군과 함께 지리산으로 들어가셨다는 풍문만 들었다. 아아, 박동무 미좇아 평양으로 갈까? 화산 선생 조쫍아 지리산으로 갈까?”

일제강점기부터 좌익 독립운동에 몸담았던 김봉한은 여수순천사건 이후 바뀐 정세 속에서 거취를 놓고 고민에 잠긴다. 박헌영은 일찌감치 평양으로 올라갔고 이현상은 지리산에서 유격 투쟁을 벌인다는 풍문. 박헌영을 좇을 것인지 이현상을 찾아갈 것인지가 그의 고민이었다.

“선고(先考)는 박동무(=박헌영) 비선으로 한밭을 두리로 한 충청남도 얼안 ‘야체이카’였으니, 어육이 되어 가는 농군들 삶을 똑바로 세우고자 두 주먹 부르쥐고 일떠섰던 것으로, 조선공산당 강령 좇아 3·7제를 이뤄내자는 것이었다. 뿐인가. 독공부로 깨친 속힘으로 숙명여자전문학교에서 수학강사를 하였는데, 그 학교를 머리지은 몇몇 학교에서 독서회라는 이름으로 반제국주의동맹을 얽어냈던 것은 애오라지 경성콤그룹 얼개를 넓혀나가자는 것이었어라.”

‘고추잠자리’ 앞부분에는 탄생 100년을 맞은 부친의 행적을 요약하고 그 뜻을 그리워하는 작가의 ‘애사’(哀辭)가 놓였다.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애사도 그렇고 소설 자체도 부친의 반미·반이승만 투쟁 노선을 가감 없이 담았다.

“당시 어른들이 무엇을 외치다 사라져갔는지를 아버지를 통해 형상화하려 했습니다. 지금 현실은 당시 상황에서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봅니다. 오히려 더 악화했죠. 대미 관계, 국제 관계, 대일본 관계 등에서 말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문학에는 그 문제를 접어두려는 분위기가 많아요. 누군가는 그런 얘기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쓴 소설입니다.”

남편을 좇아 남로당 외곽 단체 활동을 했던 어머니의 현재를 그린 단편 ‘민들레꽃반지’(<창작과비평> 2012년 여름호) 이후 4년 만의 신작 ‘고추잠자리’를 작가는 “아버지가 불러주신 듯 불과 1주일 만에 썼다”고 했다. “혼자 쓰고 읽으며 혼자 울었다”고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발표 지면을 찾지 못한 것. 지인을 통해 <창작과비평>에 게재 여부를 알아봤으나 지면 사정상 어렵다는 답을 들었고 달리 아는 잡지도 없어서 속만 태우는 중이라고.

“80년대 초에 연재하다 중단된 장편 ‘풍적’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 얘기를 본격적으로 쓴 작품입니다. 재주가 못 미친다는 게 한스러울 뿐, 저로서는 의미 있는 소설이죠. 그런데 문단의 인기 품목이 아니어서인지….”

말을 채 끝맺지 못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사뭇 떨렸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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