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박씨·2만8000원 한국전쟁 직후부터 50년 넘게 유지돼왔던 용산역 앞 성매매집결지는 재개발로 2011년 철거가 완료되었다. 2009년, 인근에서 30년 동안 여성지원활동을 해온 ‘막달레나공동체’와 주변화된 여성들의 구술을 기록해온 ‘용감한여성연구소’는 그곳에서 오래 일했던 중장년 ‘언니들’과 사진 모임 ‘판도라’를 시작했다. 판도라의 ‘언니들’은 20~30년 살았던 동네가 사라지는 과정을 직접 디지털카메라에 담았다. 허물어지는 삶의 공간을 애도하고 추억을 나누며 불안한 미래를 공유하는 ‘제의’였다. 사진에세이집 <판도라 사진 프로젝트>는 사진 모임이 2009년부터 3년 동안 작업했던 수천장의 사진과 글을 가려 묶었다. 집결지 골목 옛 모습과 철거 과정을 충실히 기록한 다큐멘터리이자 섬세한 구술사다. 여성들은 ‘디카’를 들고 다니며 소소한 일상은 물론이고, 골목길과 허물어지는 건물을 기록했다. 담배가게, 여관, 재개발 보상 요구 플래카드 등을 찍기도 했다. 생전 막달레나공동체를 무척 아꼈던 고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 장면이 나오는 텔레비전 화면도 카메라에 담았다. 바깥세상과 소통하며 추모에 동참하는 적극적 행동이었다. 여성들은 “지긋지긋하지만 편안한” ‘집-용산’에서 ‘세계’를 바라보았다.(이희영) 재개발의 시공간에는 폭력이 난무했다. 2009년 1월 이웃동네에서 벌어진 용산참사도 남의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판도라’는, 용산을 기억하려는 여성들의 ‘사적인 모임’에서 ‘사회적 의미’를 갖는 모임이 되어갔다.(백재희) 2009년 10월부터 미국 웰즐리대학, 뉴욕대학, 컬럼비아대학, 피츠버그대학, 홍콩대학 등을 돌며 외국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한국에서 ‘성노동’이 정치적인 용어이듯, 그곳에서도 항의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논란을 넘어선다. 성실하고 사려깊게 ‘집’이던 공간과 내부의 삶을 기록한 사진에서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언니들’의 자화상, 붉은 유리관 골목, 방 앞에 놓인 신발 두켤레, 밥상, 장독대, 화분 사진들은 프로 작가의 작품 못지않게, 힘있게 말을 건다. 해체되는 건물, 이사 장면, 용산에서 다른 삶으로 옮겨가는 사진들은 그 자체로 증언이다. 재개발 보상을 둘러싸고 희생을 강요하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읽을 땐 기가 막히고, 용감한 여성들의 열정과 경험담을 볼 땐 코가 아리다. 사진을 통해 무엇을 보고 싶었냐고 묻자, ‘언니들’은 “그저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이해받기를 원한다고 답했다.(원미혜) “사는 남자, 파는 여자만 있는 게 아니라, 미용실도 있고 먹고사는 공간도 있고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거야.” 낙인으로 배제하고, 자본의 개발 이익과 공간 정책으로 철거한 그곳을, 아예 원래 ‘없었던 곳’으로 잊어버리려 하는 오늘을 돌아보게 한다. 웃음, 눈물, 밥, 놀이, 소란이 함께한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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