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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불편하고 복잡한 ‘그 남자의 속사정’

등록 2016-07-28 19:21수정 2016-07-28 20:18

‘한국 남자’ 분석 보고서
“‘남자다움’ 압력 시달려”
폭력 대물림 구조도 문제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오찬호 지음/동양북스·1만4500원

혼자 있고 싶은 남자
선안남 지음/시공사·1만4500원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본격 남자 망신 에세이
권용득 글·그림/동아시아·1만3000원

‘남자’와 관련된 책 3권이 동시에 출간됐다.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는 사회학 연구자 오찬호(38)가 쓴 한국 남성 보고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2013) <진격의 대학교: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2015)을 잇는 ‘자화상’ 시리즈 3탄이라 해도 좋겠다. 군대, 남학교, 동성 친구 집단 안에서 폭력, 명령, 복종, 수치심을 내면화하며 어떻게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남성성이 탄생하는지를 그렸다.

보수적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지은이는 남성중심문화에 길들여져 “너 마초 아니었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 그런 본인의 경험담을 돌아보며 남녀 모두가 불행해지는 구조를 분석한다.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은 ‘폭력을 참아가면서’, ‘수치심을 느끼면서’ 남성이 되어간다.” 개인들이 집단의 구성원이 되면 ‘공동체’의 질서나 유지에 복무하는 괴물이 되고, 폭력을 우리(We)라는 우리(cage)에 은폐시킨다는 것이다. 남학생들의 성기를 주물럭거리고 일상적으로 매질하는 폭력 교사들의 행태 등 남성 개개인이 군대나 학교 등에서 폭력을 학습하고 대물림하면서 희생양이 된다는 점도 빠뜨리지 않는다. 특히 ‘여자다움’ ‘남자다움’이라는 고정관념을 비판한다. “여성혐오는 (…) 한국 사회의 이상한 ‘남자다움’을 맹목적으로 강요받았던 누군가가 ‘여자다움’에 길들여져 있지 않은 사람에게 불만을 느껴 ‘인간다움’을 넘어선 행동을 했음을 의미한다.”

종교라는 ‘성역’까지 건드린다. “전지전능한 절대자의 성(sex)은 남자(male)일까?” 기도밖에 할 게 없는 여자들이 ‘호구’가 돼 종교의식에서 들러리를 서는 것도 문제고, 여자 신도들이 신자 이전에 시민의 역할을 교회 안에서 하지 않아 ‘막말 성직자’가 생긴다고도 비판한다.

남녀 모두 불편해할 부분이 없지는 않다. 추천사를 쓴 서민 교수도 언급했지만 “‘설현’이라는 아이돌이 원체 끝내준다(?)길래, 한번 검색해보니 가소롭다” 같은 말들이 그렇다. 한국 사회가 당연시해온 차별·불평등·‘갑질’에 도전하며 위계구조의 이면을 폭로하는 솜씨, 옆구리를 훅 파고드는 직설적인 어조는 변함없다.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를 쓴 사회학 연구자 오찬호는 군대, 남학교, 동성 친구 집단 안에서 폭력, 명령, 복종, 수치심을 내면화하며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남성성이 탄생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동양북스 제공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를 쓴 사회학 연구자 오찬호는 군대, 남학교, 동성 친구 집단 안에서 폭력, 명령, 복종, 수치심을 내면화하며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남성성이 탄생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동양북스 제공
남성 심리 분석서 <혼자 있고 싶은 남자>의 지은이 선안남 상담심리사는 최근 남성 내담자들이 늘어나면서 고통받는 남자가 많다는 문제의식에서 책을 썼다. 남자들이 입을 닫는 ‘선택적 함구증’은 대표적인 현상이다. “남자들은 모두, 소년을 지나 남자가 되어가는 길목에서 여자를 둘러싸고 분열감을 느낀다.” 어렸을 때는 엄마의 요구와 기대가 부담스럽고, 몸만 큰 어른이 돼서는 여자친구나 아내의 기대 때문에 입을 닫는다는 얘기다. 남자아이가 기대, 상처, 혼란을 해결하지 못하고 성장해 결혼을 하면 내면의 숙제가 폭발한다. 아직 미숙하지만 ‘남자다움’이란 압력에 시달려가며 ‘가짜 독립’한 탓이다. ‘아들 바보 엄마’의 아들들은 엄마한테 받은 무한 사랑을 채워주고 싶지만, 한편으론 ‘탈옥’해 자유를 찾은 아버지를 부러워하게도 된다고 한다. 경쟁 만능, 천민자본주의 속에 남성을 생계능력에만 한정지어 평가하는 가부장제도 문제의 원인이다.

부모한테서 ‘가짜 독립’해 결혼한 남자들은 어릴 적 부모의 상처와 혼란에 매몰된다. 시공사 제공
부모한테서 ‘가짜 독립’해 결혼한 남자들은 어릴 적 부모의 상처와 혼란에 매몰된다. 시공사 제공
남자들은 불안해도 슬퍼도 외로워도 화를 내는 경우가 많은데, 분노 밑에 수치심이 있는 경우 무시무시한 폭력성과 공격성을 동반한다고 한다. 하지만 분노에 정당성이 없다면 이를 보면서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 그 분노는 취약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분노는 누구나 반드시 드러내야 하는 감정이라고 지은이는 밝힌다. 분노하지 못할수록 자신의 의견, 느낌이 사라지는 까닭이다. ‘사회적 분노’도 비슷하지 않을까. 단, 자신의 분명한 메시지로 활용해 필요할 때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

‘본격 남자 망신 에세이’라는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는 만화가 권용득(40)이 ‘전지적 남편 시점’에서 얘기를 풀어간다. 곳곳에서 배꼽 잡는 에피소드를 마치 만화 그리듯 조합해 버무려낸 글솜씨가 비범하다. 경상도 출신인 지은이는 같은 직업의 부인을 만나 가사와 돌봄노동을 나누는데, 남녀평등 때문이 아니라 가족 안에서 아들, 딸, 사위, 며느리 등 주어진 역할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서다. 아픈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는 ‘사내놈이 이까짓 일로 운다’며 야단을 쳤고, 돈 벌며 집안일까지 도맡았던 어머니는 답답했던지 5살 아들을 데리고 유혈 낭자한 영화 <13일의 금요일>을 보러 가기도 했다. 이제 아버지는 제사를 아들 부부가 알아서 하라고 할 만큼 변했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네가 행복하다고 내 며느리가 행복한 건 아니니 착각하지 말라’는 투로 충고한다. 아이가 내놓은 부모의 직업설문지를 보고 “‘주부’라고 써야 할까?” 고민하는 본인 이야기 등 3대를 넘나들며 남녀가 가족을 이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웃음 가운데서도 진지하게 묻는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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