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웅 지음/마음산책·1만5000원 쪽빛을 편애하는 남자가 있다. 미대생 시절부터 벌교 염색 공방을 드나들었고, 20대 끝무렵엔 아예 귀향했다. 충북 괴산 땅에서 쪽을 길러 천을 물들였다. 겨울이 되면 멀리 떠났으며, “늦지 않게”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다. <쪽빛으로 난 길>은 염색가 신상웅(48)이 동아시아의 푸른빛을 찾아 다닌 여행기. ‘블루로드’라고 할 만하다. 갈피마다 풍기는 문학적 ‘아우라’와 사진 속 푸른빛에, 책을 쥔 손끝부터 파란 물 든다. 그의 쪽빛 기행은 2006년부터 10년 동안 이어졌다. 중국, 타이, 베트남, 라오스, 일본을 두루 돌며 만난 염색 공방, 장인, 부족의 삶과 문화를 만났다. ‘화포’(花布) 때문이었다. 푸른 쪽 염색을 하면서도 “내 것이란 확신이 들지 않았”던 어느날, 맥이 탁 풀렸다. “과연 나는 어디쯤에서 저 푸른색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정체성에 대한 갑갑증이었다. 우연히 연암 박지원의 편지글을 읽다가 ‘화포’라는 것을 처음 만났고, 곧 그 실체도 확인할 수 있었다. 화포는 천에 물들일 부분과 물들이지 않을 부분을 의도적으로 나눠 무늬를 내는 일. 지은이는 “천 위에 누군가 의견을 남기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나도 푸른 천 위에 내 의견을 남기고 싶었다.” 홀로 ‘푸른 길’을 내는 것도 한 땀 한 땀이었다. 지도도 정보도 없었기에 저인망이 바닷속 훑듯 갈 곳을 얻었다. ‘쪽빛 길잡이’는 곳곳에서 나타났다. 서점 구석에서 엽서를 쓰다가 문득 <몽족의 바틱>이라는 책을 발견했고, 명품이 즐비한 방콕 쇼핑몰에서 난데없이 화포를 보고 말았다. 무작정 간 일본 여행에서는 기적처럼 ‘시보리’(화포) 대가 다케다 고조의 유작전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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