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소설 <한 명>(현대문학)을 낸 소설가 김숨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 종로구 중학동 ‘평화의 소녀상’을 바라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숨 지음/현대문학·1만3000원 김숨의 소설 <한 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공식 생존자가 단 한 명만 남은 시점을 상정한다. 소설이 시작되면 주인공 ‘그녀’는 둘이었던 위안부 피해자 중 한 사람이 간밤에 세상을 떠서 이제 남은 피해자가 한 명으로 줄었다는 뉴스를 듣는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린다. ‘여기 한 명이 더 살아 있다….’ 소설 마지막은 주인공 할머니가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버티는 마지막 생존자를 찾아 나서는 장면이다. 소식을 듣고 집을 나서기까지 며칠 동안 80년에 걸친 상처와 분노, 수치와 절망의 세월이 회고된다. 열세 살 어린 나이에 강가에서 다슬기를 잡다가 낯선 사내들에게 잡혀 만주로 끌려간 주인공 풍길. 내일부터 군인을 받아야 한다는 위안소 주인 여자의 말을, “군인들이 오면 밥도 해주고, 군복이나 양말 같은 빨래도 해주고 해야 한다는 소리로 들었”을 정도로 세상 물정을 몰랐던 소녀는 그러나 그로부터 무려 7년 동안 지옥 같은 위안소 생활을 견뎌야 했다. 작가는 한국과 중국, 인도네시아 등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책자와 기사, 영상 다큐멘터리 등을 섭렵해서 위안소의 끔찍한 실태를 생생하게 되살렸다. 피해 당사자들의 경험과 발언을 소설 곳곳에 녹여 넣어 이 작품이 위안부 문제의 객관적 진실에 최대한 다가가도록 했다. ‘위안부’ 다룬 김숨 소설 ‘한 명’
마지막 생존자와 또 다른 한 명
증언록 섭렵해 객관 진실 확보 당사자들의 증언에 바탕을 둔 위안소 생활의 세목은 참혹하고 끔찍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증언집에서 접한 실상을 가능한 한 덜 자극적이고 건조하게 쓰려 했다”고 작가는 말했지만, 그처럼 작가의 필터를 거친 서술과 묘사 역시 감당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채찍과 불쏘시개, 쇠꼬챙이로 때리고 벌겋게 달군 쇠막대를 질에 넣어 후비는 위안소 관리자, 자신의 성기가 잘 들어가지 않자 어린 소녀의 성기를 주머니칼로 째는 장교, 결핵으로 죽은 동료의 주검이 불에 태워지는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으면서 군인들을 받아야 했던 소녀들, 견디다 못해 도망치다 헌병대에 붙잡혀 와 칼로 발을 베이는 주인공…. 짐승만도 못한 삶을 버티느라 마약에 빠져드는가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도 없지 않았다. 그렇게 지옥의 세월 7년을 보내고, 전쟁이 끝난 뒤 만주에서 천신만고 끝에 국경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다시 5년. 열세 살 나이로 떠났던 고향을 스물다섯 나이로 다시 찾았지만, 호적부에는 이미 사망신고가 되어 있고 고향집에는 더 머무를 수가 없다…. “일본군 위안부라면 너무 익숙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저부터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더라고요. 저도 증언집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습니다. 이 소설이 독자로 하여금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제대로 알려줄 수 있다면 제 몫을 한 셈이겠죠.” 지난 3일 <한겨레>와 함께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찾은 작가는 최근 발족한 ‘화해·치유재단’에 대해 “피해 당사자들이 배제된 채 일방적으로 진행된 일이라는 점에서 어이없다. 누구보다 당사자들이 황당해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기억했으면 오늘날까지 살지 못했으리라.” 피해 할머니의 증언을 차용한 한 대목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는 나아가 “만주 위안소에서의 일이라면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며 치를 떨지만, 그러면서도 “정작 치매에 걸려 자신이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면 어쩌나 싶다.” 피해 당사자의 기억 투쟁이 진상 규명과 사태 해결의 열쇠라는 사실을 여기서도 알 수 있겠다. 시간과 다투는 기억과 증언의 절박함을 강조한 ‘한 명’이라는 제목도 같은 맥락으로 다가온다.
‘위안부’를 다룬 소설 <한 명>(현대문학)을 낸 소설가 김숨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 종로구 중학동 ‘평화의 소녀상’을 바라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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