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들의 춤
최수철 지음/문학과지성사·1만2000원
최수철(사진)의 연작소설 <포로들의 춤>은 사진 한 장에서 출발했다. 매그넘 포토스 소속 스위스 사진작가 베르너 비쇼프가 찍은 ‘유엔 재교육 캠프에서의 스퀘어댄스, 거제도, 한국, 1952’라는 작품이다. 인민군 포로들을 수용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어설프게 재현한 자유의여신상을 배경으로 가면을 쓴 포로들이 미국식 춤을 추는 기묘한 사진이다(같은 사진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뮤지컬 <로기수>가 올봄 서울 대학로 무대에 오른 바 있다). 책 말미에는 이 사진과 함께 철조망에 걸린 빨래와 그 너머 포로들을 담은 비쇼프의 또다른 작품 ‘유엔 재교육 캠프, 거제도, 한국, 1952’도 실렸다.
<포로들의 춤>은 ‘거절당한 죽음’ ‘줄무늬 옷을 입은 남자’ ‘거제, 포로들의 춤’ 세 중편으로 이루어졌는데, 세 작품 모두 거제 포로수용소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지닌다. 최수철은 1981년 등단 이후 언어의 재현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집요하게 탐구해온 작가다. 그 자신을 연상시키는 소설가 주인공이 등장하는 ‘거제, 포로들의 춤’에서 ‘나’는 “지금까지 한국의 과거사를 가지고 소설 쓰는 일에는 한번도 관심을 두지 않았”노라 토로한다. 그런 그가 전쟁기 포로수용소를 소재로 삼은 것부터가 이채로운데,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역시 최수철답다 해야 할 듯하다. 같은 작품에서 주인공이 “사실 명색이 작가인 나는 분단으로 인해 수천만의 한국어 독자를 빼앗긴 가련한 소설가였다” “나 자신이 바로 이 순간 막막한 공포를 가면으로 간신히 억누르며 경쾌하게 몸을 놀리는 포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라 되뇌는 장면은 이 연작이 최수철식 분단소설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여준다.
작가는 1952년 당시의 상황 묘사는 가급적 줄이고 그것이 그 뒤 한국 사회와 작가 자신에게 끼친 영향과 지니는 의미를 좇는 쪽으로 나아간다. ‘거절당한 죽음’에서 70년대 말~80년대 초 대학가 시위 현장과 전방 군부대를 등장시키고 ‘줄무늬 옷을 입은 남자’에서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 물결을 되살리며 ‘거제, 포로들의 춤’에서 소설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는 등의 설정이 그런 맥락에서다. 사진 한 장을 다양하게 변주한 연작이라 하기에는 세 작품 사이의 연계성이 다소 느슨해 보이기도 한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중심으로 한 장편소설은 조만간 따로 한 편을 쓰기로 훗날을 기약했다”는 작가의 말은 후속작에 대한 기대를 지니게 한다.
최재봉 기자, 사진 문학과지성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