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디아 허 지음, 남혜선 옮김/어크로스·1만7000원 비전문가가 동물원에 관해 쓴 최고의 글은 누가 뭐래도 존 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의 첫 장인 ‘왜 동물들을 구경하는가’이다. 안타깝게도 이 책 <동물원 기행>은 존 버거의 통찰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럼에도 세계의 동물원을 산책하면서 동물원과 주변의 도시와 역사, 음악 등을 엮은 에세이집이다. 근대 동물원의 선조 격인 런던동물원과 파리동물원을 출발해 아시아 신흥자본주의의 기념탑인 싱가포르야간동물원, 중국의 춥디추운 하얼빈동물원까지 동물원 14곳의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대만의 젊은 여성 소설가인 지은이가 동물원 기행을 마음먹은 이유는 2014년 덴마크 코펜하겐동물원에서 발생한 ‘복잡한 사건' 때문이었다. 이 동물원은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 기린 ‘마리우스'를 사살해 관람객 앞에서 해부하고 고기를 사자에게 던져주는 행사를 열었다. 당시 이 사건은 유럽을 꽤 떠들썩하게 했는데, 동물원의 잔혹성을 비난하는 여론이 일자 동물원장은 꿋꿋이 정당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이 상황에 난감해한 것은 동물단체들이었다. 사실 근친교배 금지 원칙조차 지키지 않거나 무작정 교배부터 시키는 동물원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지적하듯 마리우스가 전기충격으로 사라진 그 음울한 날에도 세계에서 약 30만마리의 돼지가 도축되고 약 5000마리의 쥐가 과학실험에 사용됐다. 동물원은 동물에게는 몰라도 적어도 사람에게는 평등한 공간이다. 과거에는 동물 수집이 왕족과 귀족들의 호사 취미였고, 호랑이·사자 같은 희귀동물은 왕궁 정원에 초대된 사람이나 구경할 수 있었다. 봉건체제가 해체되면서 이런 ‘메나주리’의 문이 시민에게 개방된다. 저자가 여행하진 않았지만, 창경궁 동물원(창경원)도 마찬가지다. 일제가 지은 창경궁 동물원은 왕실 전용이다가 건설 직후 순종이 백성에게 개방하는 형식을 취했다. 땅값이 가장 비싼 곳에 펼쳐진 베이징동물원은 2004년 시 외곽으로 비밀 이전을 하려다 거센 반발로 포기했다. 이렇듯 동물원은 왕의 시대에서 시민의 시대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기념비인 것이다. 주인이 시민으로 바뀌었지만, 동물원은 여전히 괴로운 질문을 마주하는 공간이다. 동물원에서 우리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동물을 가까이서 보려는 욕망에 이끌리면서도 그 강렬한 생명의 눈빛에 죄책감을 느낀다. 존 버거가 착목한 것도 바로 이런 ‘동물 바라보기'였다. 갇힌 동물은 눈빛과 행동으로 사람과 사회를 바꾼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실험실의 쥐들은 강제로 주입된 암세포 때문에 죽어가는 비련의 존재들이다. 그들은 고통스럽게 찍찍거리고, 젊은 연구원들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동물실험 윤리기준이 생기고 동물권 운동이 성장하며 법제화에 이른다. 동물의 고통스러운 몸짓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사실 근대 초기 열악한 동물원에서 현대 생태동물원으로 진화한 동력도 인간의 죄책감이었다. 저자가 수차례 인용하는, 철창을 없애고 해자를 판 독일 하겐베크 동물원의 전시공간(현대 동물원의 기본 구조가 되었다)도 인간의 윤리적 갈등을 회피하려고 고안된 장치다. 물론 저자가 이런 포스트구조주의적 논의를 하는 건 아니다. 욕망과 윤리가 충돌하는 막다른 길에서 이것저것 이야기할 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답을 내놓지도 않는다. 그러나 런던 하늘에 떠오른 핑크 플로이드의 돼지 풍선, 중국 근대사의 전쟁영웅 코끼리 ‘린왕’ 등 동물원에 접혀진 낭만적인 기억을 펼쳐 보이는 것만으로도 동물원을 교차하는 권력의 그물망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동물원과 주변의 도시 풍경에 대한 우아한 잡담이다. 그리고 마리우스가 일깨운 윤리적 미로에서 탈출할 수 있는 근육을 길러주는 것도 바로 그런 진지한 잡담이다. 저자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언제나 깨어 있는 것, 격정에 휘둘리지 않고 사고하는 것, 싸구려 동정과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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